“아이들 잊혀진 권리 찾아주고 싶어요”… 무장애통합놀이터 건립 머리 맞댄 장애아 부모들

입력 2015-07-22 02:43
무장애통합놀이터 건립을 추진 중인 장애아 부모 등이 18일 서울 마포구 난지천공원 유아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장애아동들을 관찰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제공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놀이터에서 어울릴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권리를 되찾을 수 있게 지원 체계가 조속히 확충됐으면 해요.”

서울 마포구에 사는 장모(49·여)씨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 준영(가명·16)군과 함께 지난 18일 서울 난지천공원을 찾았다. 12월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 국내 최초 무장애 통합놀이터를 건립하기 위해 마련된 사전 모니터링을 위해서였다. 이날 놀이터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 8명과 부모들이 놀러왔다. 경기대 커뮤니티디자인연구소 연구원과 자원봉사자 등 5명도 함께했다. 이들은 2시간 동안 장애아들의 놀이터 이용 행태를 관찰하고 통합놀이터 설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장씨는 “준영이를 ‘장애인 오빠’라고 부르던 동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간식과 이야기를 나눈 뒤 ‘동네 오빠’ ‘우리 학교 형’이라고 하더라”며 “교실에서 2시간 장애인식 교육을 하는 것보다 30분 함께 어울려 노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놀이터에 나온 장애아동들은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기구는 두 기둥 사이의 와이어에 연결된 도르래를 타고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짚라인’이었다. 순서를 무시하고 먼저 타려고 떼 쓰던 아이들은 부모의 지도 아래 다른 아이들이 이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점차 질서를 유지했다. 기구를 탈 수 없는 아이들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겨워했다.

‘리씨증후군’을 앓는 지적장애아 김모(10)군은 이날 처음 스스로 그네줄을 잡고 앉았다. 리씨증후군은 근육이 자라지 않아 거동이 불편해지는 희귀병이다. 아버지는 혹여 아들이 떨어질까봐 뒤를 지켰다. 어머니는 역사적인 순간을 연신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김군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푹신한 바닥 위로 넘어졌지만 부모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한 장애아동의 어머니는 “장애인을 위해 만든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등 덕에 임산부, 노인, 유모차가 다 편리해졌듯 무장애 통합놀이터도 장애아만을 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설’보다 ‘관계’에 초점을 맞춘 통합놀이터를 구상해나갈 방침이다. 김은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장애아동을 ‘못하는 친구’가 아니라 ‘도와주면 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무장애 통합놀이터를 만들려고 한다. 오늘 모니터링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니 다 똑같이 ‘함께 노는 친구’일 뿐 ‘장애’에는 관심이 없었다”며 “같이 놀 수 있는 놀이공간과 분위기를 조성해 ‘관계’를 통합하는 것이 시설 자체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장애 통합놀이터 건립을 추진 중인 아름다운재단 측은 향후 두 차례 추가 모니터링 작업을 진행한 뒤 건립 계획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