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천록 (2) 방탕 끝에 얻은 폐병… 일주일 금식기도 후 새 삶

입력 2015-07-23 00:24
1994년 조용기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 박천록 이정숙 선교사 부부.

‘술취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들었음에도 크리스천이 아닌 나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계속 술 마시며 방탕한 삶을 살았다. 이렇게 1년 6개월이 지난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병원에서 ‘폐병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주는 독한 약을 먹었다. 과음으로 위가 많이 상한 상태에서 약이 합병증을 유발해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죽음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한창 나이의 28세 청년이 앙상한 몸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은 너무나 처량했다. 지난 세월이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교회 다니는 지인 한 분이 병문안을 와서 “예수님을 잘 믿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분을 따라 계속 교회를 다녔지만 차도는 없었다. 그래도 아픈 몸을 이끌고 주일 오후 3시에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가곤 했다.

하루는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속에서 “너는 내 종이다”라는 음성이 묵직하게 들려왔다. 종을 머슴살이하는 그런 뜻으로만 이해한 나는 시골로 내려가 농촌에서 품삯 받는 일꾼이 된다는 뜻인가 하고 매우 의아해 했다. 그런데 이 음성은 내가 교회에 갈 때마다 들려왔고 이것이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병세가 악화되고 있어 나는 이왕 죽을 바에 금식기도라도 한번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평의 한 기도원을 찾아가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를 했는데 너무 병약한 상태에 음식까지 끊으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 간신히 의식을 차리고 눈을 떴는데 누군가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거적 같은 것을 내 몸 위에 걸쳐 놓았다.

금식 5일째 되던 날이었다. 폐에 가득 찼던 물이 저절로 마르면서 몸에 힘이 났다. 신기해하면서 금식 일주일을 마치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폐병이 다 나았다”고 했다. 나는 비로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이 치료해 주신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고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주님. 저는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새 생명을 주셨으니 남은 삶은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서원기도를 드린 나는 교회에 거의 머무르다시피 하며 전도와 예배, 봉사로 살았다. 주변의 권유로 신학교에 입학했고 ‘주의 종’이 되기 위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신학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내가 예전에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살았는지, 죄인이었는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지은 죄들을 회개하려니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이 죄를 주님께 다 사함 받고 깨끗한 상태가 되어야 주의 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회개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한 믿음 좋은 여성을 소개받게 되었는데 그녀가 바로 아내 이정숙 선교사다. 그녀는 나와 교제를 이어가다 먼저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파송받아 가게 되었고 나는 신학교 졸업 후 개척교회를 시작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모든 것이 부족하게만 여겨져 목회가 자신이 없었고 성도도 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1994년 12월, 이미 방글라데시 선교를 하고 있던 이정숙 선교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그녀가 한국에 돌아와 내 목회를 돕는 사모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뜻은 그 반대였다. 기도 가운데 “네가 방글라데시로 들어가 아내와 함께 사역하라”는 강력한 미션을 주셨던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못산다는 방글라데시. 그것도 엄청나게 더운 이 나라로 나를 보내는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남은 삶은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한 나로서는 신혼 2개월만에 방글라데시행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