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가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와 아바나에서 양국의 대사관을 동시에 재개관했다. 한때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면서 국교를 단절했던 두 나라가 54년 만에 대사관 문을 다시 열고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과 쿠바가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널리 선포하는 행사를 가졌지만 두 나라 사이에 남은 과제도 만만치 않다.
◇워싱턴과 아바나의 다른 풍경=워싱턴DC 쿠바 대사관 앞은 아침부터 몰려든 취재진 300여명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쿠바는 대사관 재개관 행사를 생중계했고, 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취재진을 파견했다. 국교 정상화를 지지하는 단체까지 몰려들어 “비바 쿠바(쿠바 만세)” “봉쇄 해제” 구호를 외치면서 이 일대는 북새통을 이뤘다. 오전 10시30분 쿠바 국기가 대사관 바깥에 게양되자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쿠바의 인권개선을 촉구하거나 대사관 재개관에 반대하는 피켓과 시위도 있었다. 항의의 뜻으로 빨간색 페인트를 던지려다 경찰에 체포된 사람도 있었다.
같은 시간 아바나의 미국 대사관은 아무런 행사 없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러나 대사관 밖에는 미국 비자를 신청한 사람들이 오전 6시부터 몰려들어 장사진을 쳤다. 대부분 미국에 사는 친척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사람들이었다. 쿠바의 역사학자 에우세비오 레알은 공산당 기관지 그라마와의 인터뷰에서 “1961년 미국에서 내려졌던 쿠바 국기가 다시 올라가기까지 53년11개월18일을 기다렸다”며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역사를 되새기는 의미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형 민간 항공사들은 쿠바 직항 노선 개설을 서두르고 있다. 전세기 운항도 수지가 맞지 않아 포기했지만 국교 정상화 이후 쿠바를 찾는 미국인이 한 해 350만∼5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관타나모 기지와 쿠바 사회의 변화는 갈등 요인=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은 워싱턴에서 쿠바 대사관 재개관 행사를 마친 뒤 곧바로 외무장관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회담에서 주요 쟁점에 대한 의견 절충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케리 장관은 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 간 중대한 차이들이 있다”면서도 “이러한 차이들에 대한 정당한 존중에 기반해 양국은 협력하고 공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와 쿠바 관타나모의 미 해군기지 부지 반환 등을 요구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봉쇄의 완전한 해제와 불법으로 점령한 관타나모 부지의 반환, 쿠바 주권에 대한 존중, 쿠바인의 인적·경제적 손해에 대한 보상 등이 국교 정상화로 나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의 이런 요구는 두 나라 사이에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경제제재가 해제되고, 인적 교류가 늘어나면 쿠바의 정치·사회 체제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된다. 쿠바가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미·쿠바 관계도 영향을 받게 된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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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대사관 재개관 축하 ‘북적’-미국대사관 비자 신청 ‘장사진’… 54년 만에 국교 정상화
입력 2015-07-22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