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불법 해킹 의혹을 바라보는 검찰의 심경은 복잡하다. 고발장이 접수되면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진행 양상을 예의주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국정원 때문에 또다시 검찰 조직이 정쟁(政爭)에 휘말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중이다. 검찰에 떠넘길 게 아니라 정치권에서 문제를 해결하길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검찰은 아직 가시적인 움직임은 삼가고 있다. 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일부 진보단체에서는 국정원의 불법 해킹 의혹을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간부는 21일 “국회 논의사항과 국정원 해명자료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발장이 접수될 경우에 대비해 기초적인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발될 경우 검찰은 이번 정권 들어서만 세 번째 국정원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앞선 두 차례 수사에서 검찰 조직은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정권 초기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사건을 수사하면서는 수사팀과 지휘라인의 갈등이 불거졌다. 결국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윤석열 수사팀장은 다음 인사에서 좌천됐다.
유우성 서울시공무원 간첩증거 조작사건 때도 검찰은 공안사건 수사 파트너인 국정원을 샅샅이 헤집어야 했다. 이후 간첩사건 등 굵직한 공안사건은 거의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 대검찰청의 한 간부는 “국가안보를 위해 정보를 다루는 국정원에 최후 수단인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고 범죄 집단 다루듯 하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수사에 착수하게 되더라도 난관이 많다. 현재 의혹이 제기되는 수준으론 구체적 범죄혐의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10조에 정보수사기관이 감청설비를 도입할 때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따로 처벌 규정은 없다. 해킹 프로그램을 ‘설비’로 확대 해석할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또 해킹 프로그램으로 감청당한 피해자가 실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국정원이 퍼뜨린 악성코드를 설치한 모든 사람이 실시간 감시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광범위한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감청의 구체적 피해를 파악하려면 또다시 국정원의 고유활동을 들여다봐야 한다. 국정원의 비밀스러운 업무영역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입장과 국민적 의혹 해소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검찰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실무자였던 국정원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한 공안통 간부는 “20개 회선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국정원이 정치권에 해명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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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7-22 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