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최석운] 그림 그리기와 감상하기

입력 2015-07-22 00:30

“이 그림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나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전시장에서뿐 아니라 사석에서조차 그렇다. 질문자가 그림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부족할수록 질문 강도는 더 강하고 직접적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렸습니까?” 하는 식으로.

과거에는 이러한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화가들은 어깨와 콧날에 잔뜩 힘이 들어간 고고한 자세로 선문답 같은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알아서 보고 알아서 생각하시오’라고. 다소 고압적이기도 한 이러한 대답이 대중의 환상과 오해를 키우고 대중과 미술 사이에 넘기 힘든 높은 벽을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로 미술은 대중이 없는, ‘그들끼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미술시간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수업 준비물부터 부담이었고 사실적인 묘사, 모사를 위주로 하는 그림 수업에서 느끼게 되는 좌절은 대부분 상처로 남았다.

그림 잘 그리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이미 학창시절에서부터 미술과 담을 쌓고 남의 영역의 일로 치부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 당시의 미술 수업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적인 생각이나 상상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오십이 넘은 중년이 되어서도 미술에 대해 두려움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아무리 쳐다봐도 미술 작품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미술에 관련된 책 하나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미국의 밥 로스라는 화가가 TV 프로그램에 장기 출연해 그림 그리는 법에 대해 시범을 보인 적이 있다. 그는 눈 덮인 산과 노을빛으로 물든 들판, 숲의 활엽수들, 우거진 숲과 오두막이 있는 골짜기의 풍경을 능수능란한 붓놀림으로 손쉽게 그려나갔다. 모든 그림이 밥 로스가 말한 대로 아주 간단한 몇 가지 기법이나 손재주로 예술작품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최소한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좌절과 자기혐오를 느꼈던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미술의 마술 같은 변신에 환호했을 것이고 뭔가에 속아온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다.

물론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면 오랜 시간 전문적인 과정을 배우고 익혀서 진지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작품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개인의 삶,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창적인 생각과 표현이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이 남과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봐야 하고 자신이 표현하려 하는 것을 정확하게 끄집어내야 한다. 인생에서 스스로의 결단과 선택이 중요한 것처럼 인생의 투영인 그림에는 자기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림 안에 화가의 생각과 삶, 희로애락과 땀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어 있는지 느껴보는 것, 그에 마음으로 공명하는 것이 진정한 감상이다.

나는 전시를 시작하면 현장에 잘 나가지 않으려 한다. 작업실에서 마지막 서명이 끝나고 차에 실려 가서 전시장 벽면에 부착되고 나면 그 그림은 나의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호응을 받든 소수의 사람들이 머물러 있든 그 그림은 이제 그림 앞에 선 관람자의 것이 된다. 그림은 관람자의 눈으로 들어가 머리를 돌아 온 몸을, 존재를 타고 돈다. 나는 그런 과정을 방해할 수 없고 방해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전시장에 나타나지 않으려고 한다.

이 그림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난 절대 나의 의도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관람자의 특권, 그만의 오롯한 사색과 여행을 깨고 싶지 않으니까.

최석운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