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전157기 딸을 일으킨 ‘캐디 아빠’… 최운정, 7시즌 만에 LPGA 마라톤 클래식서 첫 승

입력 2015-07-21 02:22
최운정이 2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이랜드 메도스 골프장(파71·6512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아버지 최지연 캐디와 함께 퍼팅라인을 읽고 있다. AP연합뉴스
최운정이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
아버지 캐디와 함께한 지난 8년. “첫 우승할 때까지만 백을 메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까지 최운정(25·볼빅)은 오랜 시간을 인내해야 했다. 마침내 이룬 첫 승. 딸은 “이제 아버지를 쉬게 해 드려야 할 것 같다”고 우승 첫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최운정은 2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이랜드 메도스 골프장(파71·6512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 최종 4라운드에서 역시 첫 우승에 도전한 장하나(23·비씨카드)를 연장전 끝에 물리치고 감격의 첫 승을 신고했다. 2009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지 7시즌 만이자 투어 157개 대회 출전 만에 거둔 값진 우승이었다.

◇아버지와 함께한 8년=최운정은 중3 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된 유망주였다. 고3 때인 2007년 미국으로 건너가 단기 유학을 하기도 했다. 이듬해 LPGA 2부 투어를 통해 프로로 전향한 그는 단번에 2009년 정규투어 시드를 획득했다. 최운정의 아버지 최지연(56)씨는 경찰공무원이었지만 딸의 미래를 위해 2008년부터 직장을 그만둔 뒤 캐디를 자청했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직전 근무한 곳이 서울 혜화경찰서였다.

아버지가 직접 캐디를 자청하고 나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데뷔 후 첫 4개 대회에서 연속 컷 탈락하는 아픔도 있었다. 2012년 매뉴라이프 클래식에서 준우승하며 조금씩 정상이 보이는 듯했다. 2013년 미즈노 클래식, 2014년 ISPS 한다 호주오픈 등에서 준우승했지만 정상은 멀고도 힘들어 보였다.

아버지는 우승 못한 것이 자신의 책임인 듯해 “전문캐디를 구해보라”며 딸에게 권유했지만 “첫 우승은 아빠와 함께”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골프 대회장에서 캐디 백을 메고 딸의 경기를 돕는 모습은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해는 최운정에게 각별한 해였다. 시즌 종료 후 LPGA투어 모범선수상 격인 ‘윌리엄 앤드 마우시 파월상(William and Mousie Powell)’을 받았다. 한국 선수뿐만 아니라 제시카 코르다(미국), 우에하라 아이코(일본), 훌리에타 그라나다(파라과이)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친분을 쌓은 결과다. 상금 랭킹에서도 전체 10위, 한국 선수 중 3위에 올라 한·일 국가대항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딸에게 아버지는 캐디를 넘어 인생의 스승이었다. 그는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먼저 직업으로서 프로골프를 사랑하라고 말해줬다”고 밝혔다.

그는 딸에게 “길을 가다 보면 터널이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도 있다. 지금이 오르막일 수도 있고 터널일 수도 있다”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내리막이 나온다”고 승리에 목마른 딸을 격려했다.

지난주 US여자오픈에서는 어려운 코스였음에도 9홀 최소타 기록을 세운 딸에게 “지금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는 것 같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꼭 우승이 아니더라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면서 딸에게 희망의 말을 건넸다. 그 뒤 일주일 만에 아버지의 ‘희망가’는 현실이 됐다.

◇국산 볼의 승리=이날 5언더파 66타를 쳐 합계 14언더파 270타를 기록한 최운정은 사흘 연속 선두를 달리던 장하나와 동타를 이룬 끝에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첫 홀에서 파를 기록한 최운정은 보기에 그친 장하나를 따돌렸다. 최운정의 데뷔 첫 승으로 교포를 제외한 한국 낭자들은 올 시즌 11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이는 2006년과 2009년에 기록한 한국 선수 최다승 타이기록이다. 앞으로 15개 대회가 남아 있는 만큼 역대 최다승 돌파는 시간문제다.

최운정의 승리는 국산 골프볼의 승리다. 외국산 볼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국산 볼인 ‘볼빅’으로 우승한 선수로는 세 번째다. 앞서 볼빅 볼을 사용하는 이일희(27)가 2013년 LPGA 투어 퓨어 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했고 이미향(22)이 지난해 미즈노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개가를 올렸다.

디펜딩챔피언 리디아 고(18)는 13언더파 271타로 펑샨샨(중국)과 함께 장하나에 이어 공동 3위에 올랐다. 김효주(20·롯데)와 백규정(20·CJ오쇼핑)이 나란히 11언더파 273타로 공동 5위를 기록했다. 공동 5위 내 7명 가운데 5명이 한국(계) 선수였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