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불법 해킹 의혹 사건을 계기로 휴대전화에 대한 감청을 가능토록 한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개정안이 또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법 개정에 찬성해온 여당은 현행 통비법의 불완전성으로 합법적인 정보활동에 한계가 있는 국정원이 ‘우회로’를 찾다가 이번 사태에 직면했다는 논리를 편다. 반면 야당은 불법 해킹 의혹이 불거진 만큼 국정원의 무분별한 사찰을 막겠다는 명목을 내세워 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정치권에선 법 개정의 전제조건은 국정원의 신뢰 회복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국정원 스스로 민간인 사찰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다면 합법적인 정보 수집 목적이더라도 통비법 개정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이 지난달 대표발의한 통비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안보 수호나 범죄 수사를 위해 국정원 등 수사·정보기관이 휴대전화 감청을 요청할 경우 이동통신사는 협조해야 한다. 법안은 이동통신사의 감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했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매출액의 100분의 3 이하에 해당하는 금액을 이행강제금으로 1년에 한 차례 부과토록 했다.
현재 통비법 규정으로도 법원 영장 발부 등의 절차를 거쳐 국가안보와 범죄 수사에 필요한 ‘합법적 감청’을 할 수 있다. 다만 휴대전화의 경우 실시간 통화 내용을 들으려면 이동통신사 교환기에 감청 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지금은 이를 의무화하는 법이 없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취임 전 이에 대해 “손발이 묶여 있다”는 표현까지 썼다.
박 의원은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안보를 위해 합법적 감청을 허용하지 않는 문명국은 없다”며 “사이버 전쟁이 심각한데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제대로 일하도록 하려면 하루빨리 통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1월 감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한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도 “법에 감청은 가능하도록 해놓고 정작 여기에 필요한 기계를 설치하자는 법이 막혀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숙원과제로 여겨지는 통비법 개정은 한동안 여야 협상 테이블에 오르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불법 해킹 의혹에 대한 야당의 파상 공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면서 의혹을 파고들 방침이다. 야당의 강경 대응에는 2005년 ‘X파일 사건’에 이어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국정원의 정보활동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국가안보를 위해 통비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면서도 “과거 불법 행위를 저지른 국정원이 신뢰를 되찾고, 법규정을 벗어난 감청 등에 대한 엄격한 처벌 조항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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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7-21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