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구 1억6000만명의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 선교사다. 그런데 무슬림이 90%에 이르는 이 나라에서 선교 사역을 너무 요란하고 적극적으로 펼쳤다는 이유로 2007년에 추방당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만나기 전부터 방글라데시 선교사였던 아내(이정숙 선교사)는 추방을 당하지 않아 현지에서 나와 함께 펼쳤던 선교 사역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추방당한 지 8년이 지났으니 선교지 사역이 축소되고 약화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에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아내와 내가 설립한 러브방글라데시미션(LBM)은 지금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를 중심으로 9개의 미션스쿨과 10개의 교회, 1개의 무의탁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선교활동은 무슬림의 조직적인 박해가 있어 선교 열매를 거두기가 쉽지 않은데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학교 운영에 따른 유급교사와 직원, 교회 사역자만 130여명이니 매달 최소 3500만원 정도의 선교비가 필요하다. 은행 잔액은 항상 바닥인데 유지되는 것이 기적이다. 늘 숨이 벅찰 정도로 힘은 들지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이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벌써 보따리를 싸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추방 직후 난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13년간 온 몸을 불사르며 사역한 나를 왜 한국에 붙잡아 두시고 강제 안식년을 시키시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계속 방글라데시에 있었다면 나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은 내 성격이 다혈질적이라 적극적인 선교를 해 온 탓에 무슬림 신도들의 표적이 되어 공격을 당했을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여러 차례 무슬림으로부터 피습을 당했고 또 암살당할 뻔했던 순간도 있었다.
방글라데시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정부는 외국 선교사들의 포교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방글라데시에서 순교당한 이가 1만3000명이라고 하면 모두 놀란다. 무슬림이 삶 속에 뿌리를 내린 이들에게 배교는 용서 못할 죄가 된다.
한국으로 강제 출국당한 나는 그동안의 사역을 정리해 간증집 ‘사명’을 펴냈고 차분히 나를 돌아보며 이슬람권 선교에 대한 전략을 짤 수 있었다. 또 집회를 다니며 현지 사역을 소개하고 후원의 범위를 넓히게 된 것도 생각하면 또 다른 감사의 조건이다.
이제 국민일보 독자 여러분에게 내가 하나님을 만나 지금까지 걸어 온 간증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르듯 하나님께서는 선교사에게도 각기 다른 분량의 달란트와 선교 분깃을 맡겨 주셨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품격 있는 선교가 아니라 밑바닥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다.
이는 내가 살아온 다소 거칠었던 삶과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은 죄악에 물들어 인생을 허비하던 한 청년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주셨던 것이다.
20대의 나는 술독에 빠져 살았다. 밥은 안 먹어도 술은 마셔야 했다. 술 취하면 실수가 따르지만 마시면 온 몸에 퍼지는 짜릿한 기분을 제어하지 못했다. 절엔 안 다녔지만 스스로 불교신자라고 생각하던 내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잔뜩 술이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하던 중에 벼락치는 소리가 내 귀를 울렸기 때문이다.
“방탕하지 말라. 술 취하지 말라.”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uk42@hanmail.net
◇박천록 선교사 약력= △1959년 전남 해남 출생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졸업 △1995년 방글라데시 선교사 파송 △2007년 선교활동을 이유로 추방 △간증집 ‘사명’(LBM) 발간 △현 러브방글라데시미션(LBM) 대표
[역경의 열매] 박천록 (1) 술 취해 방황하던 청년, 선교사로 쓰임 받다
입력 2015-07-22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