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지라르 조명 ‘십자가의 인류학’ 펴낸 정일권 박사 “지라르의 인문학, 지금 한국교회에 꼭 필요”

입력 2015-07-21 00:12
최근 도서 ‘십자가의 인류학’을 발간한 정일권 고려신학대학원 박사가 사회인류학자로서 기독교를 변증한 프랑스의 르네 지라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소외당한 기독교 사상을 인류학적 차원에서 변증해 온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겸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1923∼)를 조명한 도서 ‘십자가의 인류학’이 최근 발간됐다.

이 책의 저자이자 국내 대표적 지라르 연구자인 정일권(고려신학대학원) 박사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 박사는 “지라르는 ‘인간과학의 다윈’ ‘기독교계의 헤겔’ ‘인문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크지만 한국 교계에서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라면서 “기독교에 대해 세련되고 논리적으로 설명한 지라르의 인문학은 빈곤한 신학 상황에 놓인 한국교회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라르를 두 차례 만난 정 박사는 그를 이 시대의 대표적 지성인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지라르는 2005년 프랑스 지식인의 최고 명예이자 ‘불멸의 40인’으로 불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종신회원에 만장일치로 선임됐다.

지라르는 인문학을 연구하던 중 하나님을 만났다. 1959년 회심한 지라르는 “위대한 문학작품이 실제 저로 하여금 기독교로 회심하게 만들었고, 기독교는 여전히 가장 생산성 높은 인문학”이라고 밝혔다. 정 박사는 “인문학이 지나치게 탈기독교, 반기독교적 흐름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라르는 끊임없이 공격당했던 정통 기독교의 전통과 가치를 복권(復權)시켰다”며 “신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며 십자가의 승리를 풀이했다”고 밝혔다.

정 박사는 “지라르가 감동을 받은 것은 예수님의 이야기에 당시 유행하던 영웅담의 요소들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라면서 “그리스·로마 신화에선 힘센 영웅들을 찬양하지만 예수님은 이와 반대로 처음부터 가난하고 억압받는 약한 자의 편에 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라르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희생양들과 달리 성경의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희생자들과 연대하는 ‘비폭력적 하나님’이라고 강조했다. 또 신화와 타 종교의 신들은 끊임없이 희생제물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끝으로 더 이상 희생양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수가 ‘죄 없으신 희생양’으로서 ‘승리’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지라르가 말하는 ‘십자가의 인류학’은 십자가에 달리신 자의 영원한 자기희생에 대한 역설과 승리를 뜻한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다원주의자, 해방신학자 중에서 지라르를 만난 뒤 회심한 이들이 많다”면서 “성경 텍스트뿐 아니라 인문학 언어로도 기독교를 변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지라르가 한국교회에 많이 소개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글·사진=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