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지난 12일 향후 3년간 820억∼860억 유로의 3차 구제금융을 지원키로 합의하고, 연금 및 재정지출 삭감 등 4개 개혁 법안이 지난주 그리스 의회를 통과하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던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이 일단락됐다. 그렇다면 국제 금융시장을 ‘들었다 놨다’한 그리스 위기는 끝난 것일까.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재정통합 없이 단일 유로화로 통화동맹만 체결한 유럽통합의 태생적 한계가 결과적으로 독일의 배만 불려 역내 갈등을 낳고 있어서다. 유로화 체제가 제조업 중심국인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쌓는 데는 유리한 반면, 관광 등 서비스업 중심국인 그리스의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면서 발생한 역내 불균형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유로존 경상수지 흑자의 3분의 2가 독일 몫=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는 20일 그리스 사태를 계기로 벌어지고 있는 독일 경상수지 논란을 보고서에서 다뤘다. 올해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2조3000억 유로로 전망된다. 전체 유로존 경상수지 흑자(3조4000억 유로)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수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7.9∼8.5%로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취약국 평균치(1.6∼1.7%)의 5배에 해당한다. 유럽연합의 권고기준(6%)마저 훌쩍 뛰어넘었다.
물론 이런 기록적인 흑자는 독일의 뛰어난 제조업 경쟁력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한국은행은 다른 이유도 언급했다. 환율이다. 한국은행은 “유로화 출범 이후 고평가된 그리스와 달리 독일의 실질환율은 여타 국가에 비해 줄곧 저평가됐다”며 “경제 상황에 비해 저평가된 환율이 유리하게 가세된 측면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제조업 경쟁력에다 환율 도움까지 얻으면서 독일의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보고서는 유로화가 출범한 이후부터 독일의 경상수지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한 그리스의 경우 실질환율이 고평가되면서 국가경제를 이끌었던 관광산업이 경쟁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또 유로화 체제의 특징이 독자적인 재정정책이나 환율정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리스 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3년간 시행된 구조개혁 1등 해도 소용없는 그리스=그리스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가 터질 때부터 그리스의 누적된 공공채무와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유럽연합)라 불리는 채권단이 칼을 빼들었다. 이 때문에 2013년 -12.3%에 달했던 그리스의 GDP 대비 재정수지 비율은 올해 -2.1%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경제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싱크탱크 리스본 카운슬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그리스는 조사 대상 21개국 중 구조개혁 성과가 가장 뛰어났지만 경제 상황 평가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하며 정반대의 성적표를 받았다. 재정지출 삭감 등의 구조개혁 프로그램이 실물경기를 급격히 위축시킨 탓이다.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으로 보면 독일은 제조업이 20%를 차지하지만 그리스의 제조업 비중은 8.6%에 불과하다. 그리스는 도소매 및 숙박업 등 서비스산업이 전체의 73%를 차지한다. 이는 산업 기반이 부족한 그리스가 자생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진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은 “그리스를 비롯한 적자국들은 환율 고평가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 그리스 채무 협상 등에서 역내 불균형이 유로화에 내재된 문제점으로 다시 부각될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양적완화로 유럽 구하기, 역내 갈등은?=이런 상황에서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대변되는 위기상황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유럽중앙은행(ECB)이 막대한 돈을 푸는 것도 유로존 전체의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유로존의 구조적 위험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유럽연합은 유럽과 미국의 성장률 격차가 확대되는 이유로 투자와 대출 부진, 구조개혁 미흡 및 정책운영 제약, 그리스 등 과다 채무국 부채 위기, 독일 등 핵심국의 유로경제 성장 견인력 약화를 꼽고 있다. 요약하자면 역내 불균형이 계속되는 한 유럽의 성장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하나대투증권 김두언 연구원은 “자생력을 잃은 그리스에 부채탕감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그리스에는 ECB의 전면적인 양적완화가 이끄는 유로화 약세 효과를 누릴 만한 제조업이 없다”고 지적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월드 이슈] 그리스 눈물 흘리게 한 건 독일?… 유로존 경상수지 불균형이 그리스 사태 불러
입력 2015-07-21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