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의문의 죽음] ‘지나친 업무 욕심이 사태 일으킨 듯’… 민간인 사찰 논란 유발 자책 가능성

입력 2015-07-20 02:30
사망한 국정원 임 과장은 부모·가족·직장에 보내는 유서를 각각 A4용지 1장씩 남겼다. 유족들은 당초 유서 공개를 원치 않았지만 수사 당국의 설득에 마음을 돌려 직장인 국정원 앞으로 쓴 내용만 공개했다.

임 과장은 ‘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라고 시작하는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이런 내용이 해킹 프로그램을 통한 민간인 사찰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유족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유서에는 임 과장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대목이 두 군데 있다.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합니다”라고 했고,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라고 적었다. ‘부족한 판단’은 해킹 관련 자료 삭제를 뜻하는 표현임이 비교적 명확하다. 해석하기 모호한 부분은 ‘지나친 업무 욕심’이다. 문맥상 업무를 잘해보려는 자신의 욕심이 민간인 사찰 논란을 낳았다는 자책으로 읽히지만 의문이 남는다.

해킹 프로그램의 도입·운영 실무자였던 그는 자신의 업무가 폭로되자 조직에 누를 끼쳤다는 자책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을 수 있다. 논란이 불거진 뒤 국정원에서는 임 과장 업무에 대한 감찰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가 국정원 현장조사를 실시키로 합의하면서 압박감은 더욱 커졌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실무자인 임 과장이 과연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국정원도 “(임 과장의) 책임은 전혀 없었다고 판단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고 한다. 임 과장의 활동 내역이 계선을 통해 보고 되지 않았으리란 추론도 가능하지만 해킹 프로그램 도입·운영에 수억원이 들어간 점을 보면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밝히려면 그가 ‘지나친 욕심’이라고 표현한 대목부터 설명돼야 하는 상황이다.

임 과장은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다. 동료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한 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란다”며 끝을 맺었다. 부모·가족에게 쓴 유서는 주로 ‘미안하다’는 내용이라고 당국은 전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