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의문의 죽음] 국정원 “임씨 4일간 잠 안자고 일하면서 공황상태”

입력 2015-07-20 02:49
국정원 임모 과장이 숨진 채 발견된 마티즈 승용차가 18일 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야산에 세워져 있다. 차량 조수석에 유서 3장이 놓여 있었다. 사진 왼쪽 밝은 부분은 차량 내부를 촬영하던 방송 카메라 취재진의 모습이다. 야간 촬영용 조명 때문에 주위보다 밝아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찍혔다. 연합뉴스

국정원 임모(45) 과장은 18일 오전 5시쯤 출근한다며 경기도 용인에 있는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름없이 반팔 와이셔츠에 양복바지, 구두 차림이었다. 최근 ‘국정원 해킹 사찰’ 의혹이 불거진 뒤로는 휴일에도 출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19일 “임 과장이 지난 4일간 잠도 안 자고 일하면서 공황상태를 겪고 있었던 듯하다”고 주장했다.

임 과장은 최근 가족에게 “업무 때문에 힘들다”고 자주 하소연했다고 한다. 걱정스러웠던 아내는 오전 8시부터 10여 차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갈 뿐 연결되지 않자 오전 10시4분쯤 119에 신고했고, 소방 당국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에 나섰다. 차량번호를 토대로 기지국 반경 내 차량도 수색했다. 소방요원들은 낮 12시2분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야산에서 임 과장의 마티즈 차량을 찾아냈다. 임 과장 집에서 약 13㎞ 떨어진 곳이었다.

임 과장은 운전석에 앉아 숨진 상태였다. 조수석과 뒷좌석에선 다 탄 번개탄이 발견됐다. 조수석에는 A4용지 크기의 종이에 자필로 쓴 유서 3장이 놓여 있었다. 노란색 바탕에 가로 줄이 그어진 종이였다. 이 중 2장은 가족과 부모에게 보내는 내용이 담겼고, 나머지 1장에 해킹 관련 언급이 들어 있었다.

경찰은 차량에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시신에서 외상도 발견되지 않아 임 과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19일 오후 강원도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동부분원에서 이뤄진 부검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부검을 참관한 경찰 관계자는 “외상이 없어 30여분 만에 끝났다. 기도에서 그을음이 발견됐고, 일산화탄소 수치도 75%로 측정됐다. 일반 흡연자가 3∼4% 나오는데 월등히 높은 수치여서 일산화탄소 중독에 따른 질식사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과수 관계자도 “외상 등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은 임 과장의 사망 직전 동선을 재구성하고 번개탄 구입 경위를 파악하는 등 후속 조사에 착수했다. 최종 부검 결과에서 타살 정황이 나오지 않고, 임씨가 직접 번개탄을 산 뒤 사망 장소로 이동한 것이 확인되면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되면 통화내역 등을 추가로 조사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용인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선 끊임없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임 과장의 아버지는 “나 이제 아들이 없어… 어떡해야 하나”라고 흐느꼈다. 집사였던 임 과장과 같은 교회에 다니던 지인들의 찬송가 소리도 이어졌다. 장례식장을 찾은 교회 지인은 “이럴 사람이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원주·용인=박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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