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자살한 국가정보원 임모(45) 과장은 자신의 상관과 동료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불법 해킹 논란과 국정원 조직의 무관함을 죽음으로 항변하려 한 인상이 짙다. 국정원 직원들은 과거에도 국정원이 불법행위에 연루돼 정치적 곤경에 처하거나 검찰 수사 대상이 됐을 때 자살 또는 자살기도를 통해 이에 ‘저항’하곤 했다.
국정원 권모(51) 과장은 지난해 3월 임 과장처럼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 간첩사건 증거조작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국가를 위해 일한 대공수사국 요원을 위조 날조범으로 몰아간다”고 불만을 터뜨리며 조사실을 뛰쳐나간 다음날이었다.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단기기억상실 등 일산화탄소 중독 후유증을 호소하며 두 달여 병원에 입원했고, 그만큼 수사는 지체됐다. 권 과장은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됐다가 지난 5월 항소심에서 벌금 700만원 선고유예로 감형됐다.
2005년 7월의 검찰의 ‘안기부 X파일’ 수사 때는 국가안전기획부 산하 비밀도청조직 ‘미림팀’ 팀장이던 공운영씨가 목숨을 끊으려 했다. 공씨는 딸을 통해 기자들에게 자술서를 배포한 당일 자택에서 흉기로 복부를 여러 차례 찔렀다. 자술서에는 “이제 모든 것을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 나라의 안정을 위해 참을 뿐”이라고 적었다. 공씨는 이후 구속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김대중정부 후반기 국정원 2차장을 지낸 이수일 전 호남대 총장은 같은 해 11월 불법 도청 사건과 관련해 3차례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뒤 관사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상관으로 보좌했던 신건 전 국정원장 등이 구속되자 심리적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1998년 3월 새벽 검찰 특별조사실 내 화장실에서 할복자살을 시도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한 이른바 ‘북풍 공작’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이 임박했던 상황이었다. 북풍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한 ‘자해소동’이란 게 당시 검찰 판단이었다. 그는 10여일간 병원에 입원해 “구속하려면 침대째 들고 가라”고 버티다가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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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7-20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