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3조원대의 부실이 예고된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계기로 금융 당국과 증권사, 회계법인과 신용평가사의 ‘뒷북 대응’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조선업종의 위험을 선제적으로 경고하거나 이를 평가에 반영하지 않고 구조조정 위기에 몰린 다음에야 부랴부랴 사태 파악에 나서면서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4개 대형 조선사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합계는 767억원으로 3개월 전(3445억원)보다 77.74%나 급감했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공사 지연에 따른 대규모 손실 우려가 나오고 있고, 현대중공업도 올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가 1079억원으로 3개월 전(1180억원)보다 8.54% 하락했다. 업종 전반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반면 증권사들은 느긋하다. 대우조선해양 관련 보고서를 낸 증권사 17곳 중 14곳이 이런 부실을 보고서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매수’ 의견을 유지했다. 대규모 손실 가능성과 구조조정 추진설이 나왔지만 투자 의견을 낮추거나 분석 중단을 선언한 증권사도 4곳뿐이다.
신용평가사나 회계법인도 마찬가지다. 신평사들은 대규모 부실이 알려진 지난 15일 이후가 돼서야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에 대해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각각 A-로, 한국기업평가는 A로 평가하는 등 대부분 A등급을 유지했다. 2010년부터 대우조선해양의 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은 매번 감사 의견을 ‘적정’으로 제시했다. 대우조선해양 주가는 지난 14일 1만2500원에서 지난 17일 7980원까지 떨어졌다. 지분 31.46%를 보유한 최대주주 KDB산업은행은 15∼17일 계속된 주가 하락으로 지분 가치가 7527억원에서 4805억원으로, 2대 주주(지분 12.15%)인 금융위원회도 지분 가치가 2907억원에서 1856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금융감독원도 사태가 커진 뒤인 지난 주말 대우조선해양 관련 증권사 분석 보고서에 대한 점검에 착수했지만 고질적인 ‘장밋빛 전망’에 대해 뾰족한 재발방지책이 없다. 손실 가능성이 알려지고 나서야 신용등급을 내린 신용평가사들에 대해서도 손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숨겨진 부실이 드러난 만큼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이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 등 구조조정 가능성을 거론하지만 채권단은 일단 경영상태를 정확히 파악한 후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가장 많은 여신을 제공한 수출입은행이 책임을 지고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이 현재 약 6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한 상태여서 두 차례의 회사채 만기를 넘기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오는 23일 2000억원, 11월30일까지 회사채 3000억원을 갚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긴급 유동성이 필요한 상황을 대비해 두 은행이 선수금환급보증(RG)을 책임진다는 방침이다. RG는 조선소가 선주로부터 선수금을 받고 선박을 건조하다가 납기 안에 배를 인도하지 못할 때 선수금을 돌려준다는 보증서를 말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초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라인이 발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11척을 18억 달러(약 2조원)에 수주했지만 보증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기획] 조선업 부실 심각한데… 당국 뒷짐, 증권·신평사는 뒷북
입력 2015-07-20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