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11시 울산 농소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이색 졸업식이 열렸다. 교탁 앞에서 아흔을 넘긴 교사가 여든이 넘은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교사의 손에는 졸업장이 들려 있었다.
1949년 이 학교(당시 농소공립국민학교)를 졸업한 113명 가운데 20여명이 당시 은사인 이병직(91) 전 울산교육장을 모시고 66년 만에 졸업식을 재연하는 자리였다. 백발이 성성한 제자들은 이 전 교육장이 이름을 부르자 차례로 의자에서 일어나 은사 앞으로 가 부동자세로 섰다. 이문봉(82) 할머니는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어 졸업장을 받았다.
이 전 교육장은 “졸업식을 다시 연다는 소식을 듣고 잠이 오지 않았다”며 “66년 전 졸업식 때는 제자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오늘은 내가 울 것 같다”고 말했다. 배향숙(80) 할머니는 “다시 국민학교(옛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온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 전 교육장은 “예전에 보던 얼굴들이 이제는 어디 가고 없다”며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남은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라”고 말을 맺었다.
제자들은 스승에게 ‘선생지풍 산고수장(先生之風 山高水長)’이라는 글귀가 쓰인 족자와 회초리를 선물했다. 글귀는 ‘선생의 덕풍(德風)은 산이 높고 물이 긴 것과 같다’는 내용이다.
이날 행사에는 이 학교 5학년과 6학년 학생 25명도 참가해 ‘졸업식 노래’를 함께 불렀다. 1절은 현재 학생들이, 2절은 66년 전 졸업생들이, 3절은 다 같이 부르며 세월을 뛰어넘어 선후배의 우애를 다졌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
아흔 은사와 66년 만에 다시 연 ‘추억의 졸업식’
입력 2015-07-20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