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르포] 주민 “땅값 하락에 건강 악영향” vs 한전 “전기 공급 위해 필요”

입력 2015-07-20 02:25
“땅값 떨어지고 건강에도 안 좋다는데···내 땅, 우리 지역엔 절대 안 된다.”(송전탑 건설 부지 주민)

“빨래를 아무리 많이 하면 뭐하나 빨랫줄이 있어야지. 산업단지 등 지역에 꼭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불가피하다.”(한전 관계자)

지난 5월 이후 한국전력이 건설 중인 새만금 송전탑 부지에는 밤마다 ‘불침번’이 등장했다. 군산 미성동, 옥구읍, 회현면에 사는 60, 70대 노인들이 2∼3명씩 짝을 이뤄 송전탑 공사를 막고 있다. 종종 한전 공사 관계자들과 승강이도 벌인다.

지난 8일 오후 전북 군산의 81번 새만금 송전탑 건설 예정 부지 앞. 윤숙자(65·여)씨는 “우리 논 위로 송전선이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밥맛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인근 옥구읍에서 20년 넘게 벼농사를 지어온 그는 3개월째 이곳에서 기약 없는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2012년 6월 중단됐던 새만금 송전선로 공사가 재개되자 이를 막기 위해 나선 것이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도 곳곳에 보였다.

이날 81번 철탑 앞에는 주민 5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지난달 군산시청 현관 앞에서 점거농성에 이은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김덕중(60) 새만금송전철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총무는 “송전탑이 들어서면 벼나 보리를 재배하는 농가에 직격탄이 된다”며 “땅값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주민 건강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다”고 말했다.

갈등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산시가 한전에 새만금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먼저 요청했다. 군산산업단지에 공급되는 전력량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군산변전소에서 새만금변전소(30.6㎞)까지 영광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나르는 ‘통로’ 역할을 하는 345㎸급 송전탑 88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2011년까지 42개가 세워졌다. 그해 2월 나머지 46개 공사가 시작됐지만 1년4개월 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주민들은 환경 파괴와 재산권 보호를 주장하며 공사를 막아섰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조정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한전 관계자는 “빨래를 아무리 많이 해도 빨랫줄이 있어야 널 수 있다(전기를 생산해도 옮길 송전선로가 있어야 쓸 수 있다)”고 했고, 주민들은 “내 지역엔 절대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새만금 지역 외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송전탑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그렇다고 생산된 전기를 필요한 지역으로 나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적절한 대화와 협상, 타협으로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군산=박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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