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자는 결기 때문일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통과된 지난 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 풍경에는 어쩐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실제 주총 현장에서는 애국, 국익 같은 단어들이 난무했던 모양이다. 소액주주들은 “애국하는 마음으로” “국익을 생각해서” 혹은 “국민경제를 위해”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합병에 반대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무릎 꿇게 만든 건 한국인의 저 열정적 애국심인 셈이다.
기업 간 인수·합병(M&A)이라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결정이 한국 사회에서 마치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처럼 전개되는 걸 바라보는 외부 시선은 당황 자체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한국의 민족주의가 투표를 했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아무리 다급해도 금 모으기 같은 애국심 캠페인은 한 번만 했어야 했다. 두 번째 반복된 역사는 희극이 맞다. 한국인의 애국심 DNA가 외부의 호출에 뜨겁게 호응한 것까진 좋았다. 한데 애국시민 역할을 완수하고 나니 문득 우리가 대체 무슨 일을 한 건지, 모르겠다는 기분이 돼버린 거다.
재벌 계열사가 특정 방식으로 합병하는 걸 돕는 건 왜 애국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한 회사가 되는 일, 그것도 정확히 ‘1대 0.35’의 비율로 합치는 일, 그러니까 제일모직 주식 가치를 삼성물산의 3배쯤 쳐주는 일은 나라를 구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나. 그것은 삼성가(家) 3세들이 제일모직 대주주라는 사실과는 무관한가. 혹시 ‘1대 1’이나 ‘1대 0.5’ 합병을 주장하면 국익을 해치는 건가. 아니면 삼성그룹의 이익을 해하는 일인가. 그도 아니면 삼성가를 공격하는 일인가. 이 세 가지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그러니까 삼성가와 삼성그룹의 이해, 국익은 동일한 것일까, 아닐까. 어느 질문에 대해서도 우리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적어도 삼성으로부터는.
이번 합병에서 극심하게 대립한 찬성·반대, 보수·진보, 국내·국외 언론을 망라해 다들 동의한 게 하나 있다. M&A의 핵심이 사업상 시너지 효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두의 관심사는 결과적으로 확보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이었다. 많은 기사들이 “그건 당연해서 말할 필요도 없지” 하는 태도로 누가 이길지를 따졌다. 그 와중에 국내에서 “삼성을 지키자”는 “나라를 지키자”와 같은 말이 돼버렸다.
사실 그래서 발끈하게 된 거다. 개인적으로 별 인연이 없는 두 기업의 합병에 반감이 치솟은 건 논리 없이 쏟아지는, “먹튀 자본론을 앞세운 애국심 마케팅”(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때문이었다. 책임감 없는 먹튀 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데야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게 삼성그룹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지 않나. 누군가의 경영권을 사수해야 한다는 말은 더구나 아닐 테고.
이 부회장이 이번 합병을 통해 시가 190조원 거대 글로벌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안다. 그 출발이 20년 전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단돈 65억원이라는 것도, 삼성에버랜드의 48억원 전환사채가 제일모직을 거쳐 통합 삼성물산의 뿌리가 된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 과정이 정당했는지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을 덮자고 해도 질문은 남는다. 그렇게 쌓이고 이전된 삼성의 부는 한국 사회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배되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차치하고 최소한 ‘애국주주’에게는? 이재용의 삼성은 이제라도 답을 내놓을 것인가.ymlee@kmib.co.kr
이영미 종합편집부 차장
[뉴스룸에서-이영미] 삼성을 생각한다
입력 2015-07-20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