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이 아니다. 레퍼런스일 뿐이다.” 힙합가수 크러쉬가 표절 의혹에도 음악차트 1위다. 이제 표절을 해도 퇴출은 없다. 표절을 하고도 표절 판정 받는 것은 정말 어려운 기록을 남기는 일이 되었다. 표절 판정이 선고되기까지는 원작자의 길고도 험난한 법적 투쟁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희한한 일이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2006년 작곡가 강현민이 ‘너에게 쓰는 편지’를 작곡한 김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표절 시비만 일었지 표절 판결은 없었다. 법원까지 가지 않고 당사자들끼리 원만하게 합의한 정황은 곳곳에 드러난다. 창작자들끼리 표절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금전적 협의를 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1990년대 대중음악계는 표절에 연루되면 바로 퇴출이었다. 법 이전에 국민적 정서가 범법자로 낙인찍었다. 시간이 갈수록 표절에 대해 엄격하지 못하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창작자를 음악 제조기로 여기는 음악산업의 구조에 기인한다. 음악 제작사들은 작곡가에게 특정 곡을 제시하며 이 곡을 레퍼런스로 곡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이제 일반적인 제작 관행이 되었을 정도다.
창작자들의 의식도 문제다. 제한된 시간에 곡을 납품하기 위해 레퍼런스는 참고의 범위를 벗어나 표절로 가는 교두보가 되는 것이다. 창작자에게 ‘양심과 자기검열 그리고 책임’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지켜야 할 것들을 교묘하게 피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야만적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뼈를 깎는 고뇌와 창작의 열병 없이 대중을 어떻게 감동시킬 수 있는가. 또 음악 수용자의 주체인 젊은세대들 또한 저항과 고민이 결여된 일방적 수용으로 일관해서는 균형 있는 음악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논란으로 물들고 있는 표절의 최대 피해자는 작곡자도 노래를 부른 가수도 아니다. 바로 일그러진 오늘을 사는 우리다.
강태규(대중음악평론가·강동대 교수)
[문화공방] (12) 표절과 레퍼런스
입력 2015-07-20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