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安倍의 일본, 헬로키티도 우려하다

입력 2015-07-20 00:41

점으로 콕 찍은 두 눈과 가운데 동그랗고 노란 코밖에 없는 둥글넓적한 얼굴에 왼쪽 이마엔 늘 커다랗고 빨간 리본을 한 새끼고양이. 캐릭터상품 헬로키티의 모습이다.

헬로키티는 1974년 일본의 산리오가 개발해 75년부터 상품화한 브랜드로 본명은 ‘키티 화이트’다. 그런데 키티는 단순한 새끼고양이가 아니다. 쌍둥이 자매 미미부터 남자친구 다니엘, 부모·조부모에 이르기까지 의인화된 캐릭터들과 함께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귀염둥이인줄만 알았던 헬로키티가 올 여름 정치적 발언을 쏟아냈다. 정확하게는 헬로키티를 만든 산리오의 주장이다. 산리오가 지난 10일 발간한 ‘이치고신문’ 8월호(570호) ‘이치고 임금님’ 코너에서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하자’란 제목으로 “지난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글쓴이는 산리오의 창업자로 키티를 세상에 내놓은 쓰지 신타로(?信太郞·1927∼) 사장이다. 이치고는 딸기다. 캐릭터상품 정보를 주로 제공하는 이치고신문에서 평화, 전쟁 등의 주제는 좀 어색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전쟁 통에 많은 동급생들이 죽었다면서 지금의 평화를 꼭 지켜야 한다고 이치고신문 독자들에게 호소했다.

이치고 임금님의 호소가 있자 SNS에서는 적잖은 반향이 일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담은 안보법제를 둘러싼 찬반으로 일본열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나고야 시민들은 지난달 27일 ‘전쟁을 장사지내라’는 슬로건과 함께 상복 침묵행진을 벌였고, 비슷한 내용의 반대집회가 일본 곳곳에서 이어졌다.

그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국민들에게 충분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안보법제를 밀어붙여 왔다. 마침내 지난 16일엔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순전히 수적인우위를 앞세워 안보법제를 중의원에서 가결시켰다. 이에 시민들은 ‘이게 민주주의냐’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평화를 포기하지 말라’ ‘전쟁입법은 안 된다’ 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안보법제는 크게 두 가지다. 무력공격사태법, 주변사태법 등 관련 10개법에 대한 개정안을 일괄 처리하겠다는 ‘평화안전법제 정비법안’과 국회의 승인만 있으면 언제든 자위대를 분쟁지역에 파견할 수 있도록 새로 만든 ‘국제평화지원법안’이다. 문제는 개정안과 신법안에 담긴 전제조건들이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요건으로 ‘일본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등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라고 내걸고 있지만 ‘명백한 위험’이 뭔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확대해석한다면 국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쟁에 휩쓸리게 된다. 아베 총리는 안보법제 추진과 관련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필요성을 주장해 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위헌성만 되레 두드러졌다. 그는 그저 정부가 ‘종합적 판단’을 하겠노라고만 하면서 피해갔다. 말하자면 백지위임 요구만을 했을 뿐 국민 설득엔 실패한 셈이다.

안보법제는 전쟁 포기, 전력 불보유를 담은 일본국 평화헌법에 위배된다. 일본의 헌법과 그 해석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리로선 논외의 주제인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 시민사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일 교도통신의 여론조사 발표에 따르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지난달 47.4%에서 37.7%로 10% 포인트 가깝게 추락했다. 안보법제와 관련해서는 ‘반대’가 68.2%로 ‘찬성’ 24.5%를 크게 웃돌았다.

일본 시민사회의 평화·민주주의 수호노력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에 일본의 보수·우익정부와 시민사회를 가려서 지칭하고 대응해야 함을 실감하게 된다. 평화는 한 나라만의 관심거리가 아니니 말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