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삼성그룹과 일전을 벌인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결국 졌지만 이번 패배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다. 앞으로 계속 삼성을 압박하다 보유 지분을 비싸게 팔고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엘리엇이 속으로는 합병안이 통과되기를 바랐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합병이 무산됐다면 엘리엇이 단기간에 차익을 실현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합병이 이뤄진 뒤에는 여러 방법으로 통합 삼성물산을 괴롭히다 ‘그린메일’(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에게 보유 주식을 높은 가격에 팔아 프리미엄을 챙기는 행위)을 보낼 수 있다. 실제로 엘리엇은 다수 투자 사례에서 5∼10% 안팎의 지분을 사들인 뒤 나중에 대상 기업에 지분을 비싸게 넘기고 나왔다.
엘리엇은 당분간 소송 등으로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주총 직후 엘리엇은 “수많은 독립주주들의 희망에도 합병안이 승인돼 실망스럽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합병 무효청구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앞서 1, 2심 법원이 엘리엇이 제기한 주총 결의 및 자사주 처분금지 가처분을 모두 기각하면서 삼성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향후 소송전에서 엘리엇은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다.
엘리엇이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를 제기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지만 엘리엇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투자 책임자는 최근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ISD 가능성을 부인했다.
엘리엇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사외이사 알박기’를 하거나 합병 법인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 이사진 교체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윤승영 연구위원은 “엘리엇이 소액주주나 다른 기관과 연대해 합병 법인에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외이사를 넣어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소송 등 외부 압력을 중지하는 것과 딜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 입장에선 엘리엇이 외부에서 공격하도록 놔두는 것과 내부로 들어와 경영에 참견토록 하는 것 모두 부담이 된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엘리엇, 졌다? 밑지는 장사 아니다!… 합병 저지 실패, 다음 행보는
입력 2015-07-18 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