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여자 P씨. 올해 초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J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 검사 결과 통증은 복수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간담도, 췌장, 위, 자궁, 난소 등 복강 내 어떤 장기도 복수를 유발할 병소(病巢)는 안 보였다. 병원 측은 환자의 몸에서 뽑은 복수를 뒤졌다. 거기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복부CT를 촬영했다. 그제야 암세포가 보였다. 뱃속에 암세포가 가득 찬 상태였다. 그러나 암세포가 어떤 종류이고,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55세 남자 K씨. 3년 전 이맘때 소화가 안 되고 기분 나쁜 복통이 계속돼 병원에서 위·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깨끗했다. 하지만 여전히 배가 아팠다. S병원을 찾아 복부초음파 및 CT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복강 내 췌장 옆쪽에서 이상 염증 조직이 발견됐다. 정체불명의 암세포였다. 어디서 빠져나온 녀석인지 분명치 않았다. 또 다른 S병원을 찾아 다시 검사를 받았다. 그래도 똑같았다. K씨는 그해 연말 숨졌다. 진단에서 사망까지 6개월밖에 안 걸린 초고속 악화였다. 일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나이에 고된 항암치료를 감내한 것에 대한 대가치곤 너무나 가혹한 결말이었다.
정체불명의 암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몸에 암이 생긴 것은 알지만 그 암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미스터리’투성이 출처불명의 암이 면역력이 약해지는 40대 이후 중장년층을 집중 공격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국내 암 진료 환자를 분석한 결과 ‘부위의 명시가 없는 악성 신생물’(질병 분류코드 C80)과 ‘행동양식 불명 또는 미상의 신생물’(D37∼48) 등 원발부위 불명암(Cancer of Unknown Primary Site), 일명 컵스(CUPS) 환자가 연평균 7.5%씩 무려 37.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7일 밝혔다.
컵스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연령층은 50대로, 전체의 24.6%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40대 18.5%, 60대 19.4%, 70대 14.4%, 30대 10.8% 등 순이었다. 일반 암의 연령별 분포와 비슷한 비율이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신상준 교수는 암이 많이 생기는 고령인구가 계속 늘고 있는 데다 건강검진의 보편화로 우연히 암을 발견하듯 컵스도 같은 루트로 발견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컵스는 원발부위의 암이 없어져 찾을 수 없는 게 특징이다. 다시 말해 분가를 시킨 암은 보이는데, 그 암을 만든 친정 또는 본가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격이다. 그러니 치료하기는 더 어렵다.
보통 다른 암 환자의 경우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진단 후 경과 및 향후 치료 계획을 설명하는 데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반면 컵스 환자는 두세 차례에 걸쳐 반복 설명해야 하며 최소 3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다. 생소한 컵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까닭이다.
중앙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김희준 교수는 “원인을 못 찾는 담당 의사를 못 믿겠다며 ‘병원 쇼핑’을 가장 많이 하는 환자가 컵스 환자라는 말이 있다”며 “현재로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새로운 검사, 같은 검사를 반복하다 비용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출처불명 전이암 증가] ‘컵스’ 잡아야 산다
입력 2015-07-18 02:23 수정 2015-07-18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