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가족 휴가, 발리는 구경도 못하고… 대합실서 14시간

입력 2015-07-17 02:43 수정 2015-07-17 11:21

지난주 인도네시아 발리로 여름휴가를 떠났던 여행객들이 졸지에 ‘난민’ 신세를 경험해야 했다. 이들은 다른 도시에 임시 착륙한 상태로 14시간 동안 기내와 공항 대합실에서만 대기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항공사 측이 식사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채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다 결국 비행기를 되돌렸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난 9일 오후 8시56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발리행 아시아나항공 OZ763편은 같은 날 오후 11시43분(현지시간) 자카르타의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임시로 착륙했다. 화산 폭발로 발생한 화산재 때문에 목적지인 발리 덴파사르 국제공항이 폐쇄된 탓이었다. 기장은 약 1시간 전 안내방송으로 승객에게 발리 공항 폐쇄 사실과 임시착륙 계획을 알렸다. 인도네시아 시간은 한국보다 2시간 늦다.

승객들은 기내와 공항 출국장 대합실에서 대기했다. 다른 곳으로는 갈 수 없었다. 대합실은 100명 정도 들어갈 만한 공간에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승객 수에 비해 좁아 대부분 기내에 머물렀다고 한다.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온 승객은 아기 1명을 포함해 275명이었다.

항공사 측은 자카르타에 착륙한 뒤 승객들에게 “발리 공항이 다시 열릴 것 같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몇 시간 동안 추가 안내는 없었다. 여객기는 뜰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승객들은 항공사 직원에게 언제 다시 출발하는지 물었지만 기다려 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현지 공항에서 처음 보내온 ‘노탐’(안전운항정보)에 따르면 발리 공항은 10일 오전 5시30분까지 착륙 금지 상태였다. 항공사 측은 오전 6시30분쯤 발리 공항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여객기는 그 뒤로도 꿈쩍하지 않았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항의하는 승객도 늘었다. 아내와 여행을 갔던 회사원 박모(36)씨는 “대기 시간이 2시간, 3시간, 4시간으로 길어지는데 숙박을 제공받기는커녕 공항을 나갈 수도 없었다.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현지 당국이 입국을 허가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회항 결정이 내려진 건 자카르타 체류 9시간 만인 10일 오전 6시30분이다. 여객기는 그러고도 7시간이 더 지난 오후 1시39분에야 이륙했다. 인천공항에는 우리 시간으로 10일 오후 10시54분 도착했다. 승객들은 인천공항을 출발해 다시 돌아올 때까지만 26시간을 허공에 날린 셈이다.

승객들은 자카르타에 머문 14시간 동안 제대로 된 식사가 한 번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카르타 착륙 후 빵과 물이 나왔지만 끼니를 때우기에는 부족했다. 이후로는 6∼7시간 지나 아침이 되도록 식사 얘기는 없었다. 승객이 배고프다고 하자 그제야 빵을 줬다고 한다. 항공사 측은 “식사를 제공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며 “샌드위치, 빵, 음료수, 커피, 차 등 간식류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승객들이 원하는 날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하고 여행을 포기한 승객에게는 항공료를 환불했다. 일부 승객은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항공사는 ‘수용불가’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공항 당국 지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당국이 입국을 불허하고 후속 지침을 알려주지 않아 승객에게 정확한 정보나 대책을 말씀드릴 수 없었다. 최대한 발리까지 모시려고 했는데 현지 공항 사정으로 최종 회항 결정이 지연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