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에서 16일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무력공격사태법을 비롯한 안보 관련 주요 법안들이 통과되면서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욕도 9부 능선을 넘게 됐다. 참의원 의결과 국민들의 반발이라는 암초를 넘어야 하지만 현재로선 돌이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향후 몇 개월 사이에 관련 절차를 모두 마무리지을 경우 일본은 당장 올 연말부터 유사시 언제라도 참전할 수 있게 된다.
안보 관련 법안의 주요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쟁 포기는 물론 전력(戰力)도 보유하지 않겠다는 헌법 제9조가 사실상 용도폐기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만든 무력공격사태법의 경우 직접 공격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본의 존립 위협시’ 다른 나라에 대해 선제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중국이나 북한이 미군과 전투를 벌일 경우 제3자인 일본이 두 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존립 위협’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이는 해석하기 나름이어서 별다른 구속력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아울러 한반도 유사시 미군을 후방지원할 수 있도록 한 중요영향사태법도 개정되면서 한반도 상황에도 개입할 근거를 갖게 됐다. 후방지원이긴 하지만 무력공격사태법과 맞물릴 경우 사실상 동맹군으로서 전방위 개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번 안보법제 처리는 지난 4월 27일 미일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됐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양국은 18년 만에 지침을 개정해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및 자위대의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의 지리적 제약을 제거했다. 동·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이 필요했던 미국과 중국을 견제하고 패전국의 멍에에서 벗어나 정상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아베 총리의 야욕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도쿄신문 등은 이번 법제화가 한반도나 북한에 대한 대응보다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기에 중국의 선제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야당과 국민의 강한 반대와 위헌 논란이 이는 데도 강행처리라는 무리수를 둔 것은 법안 통과에 대한 아베 총리의 의지가 그만큼 확고하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실제 아베는 처음 총리가 됐을 때인 2006년 이미 집단자위권을 행사토록 하고 개헌까지 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바 있다. 더구나 지금은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정이 참의원과 중의원에서 모두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조급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도발적 행태는 1960년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1896∼1987) 당시 총리가 주도한 미·일 안보조약 개정 양상과도 빼닮았다. 기시는 승전국 미국과 보다 대등한 관계를 맺는다는 명분 아래 전쟁에 일부 관여하는 방향으로 안보조약 개정에 나섰다. 개정 내용에는 마치 현 집단자위권과 같이 주일미군이 공격받을 시 자위대가 대응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됐다. 하지만 1960년 5월 기시 정권이 야당을 배제한 채 조약 개정 비준안을 강행처리하자 국민이 반발하고 일어섰고 기시 내각은 2개월 뒤 총사퇴했다. 지난 13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9%를 기록하는 등 인기가 급추락하고 있어 아베도 무리수 끝에 물러난 외조부와 같은 길을 걷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日, 전쟁하는 나라로] 아베 ‘위험한 야욕’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
입력 2015-07-17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