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2012년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유무죄를 아예 판단하지 않고 쟁점 부분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정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국정원 사이버 심리전단을 동원해 정치·대선 관여 글을 올리고 댓글 찬반 표시를 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심이 증거능력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고 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한 오류가 있는 만큼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 범위를 다시 확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그간 정치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최종심에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대법원이 유무죄 자체를 판단하지 않음에 따라 서울고법에서 재심리를 해야 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됐다. 원 전 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국정원법 위반(정치 관여)과 공직선거법 위반(대선 개입)이다. 1심은 ‘정치 관여=유죄, 대선 개입=무죄’로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반면 항소심은 대선 개입까지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는 등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핵심 증거인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이메일 첨부파일 ‘425지논’과 ‘씨큐리티’가 단편적이고 조악한 형태라서 업무상 작성된 통상 문서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를 토대로 이뤄진 사실관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배척한 증거는 원심에서 선거법 위반 판단의 토대가 됐던 것이라서 앞으로 원 전 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원심이 어떻게 판단할지 재심리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신속히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이번 파기환송으로 정치적 논란이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법원이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든 국가기관의 국기문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시간을 벌고 있는 것 같아 찜찜하기만 하다.
[사설] 국정원 대선개입 유무죄 판단 비껴간 대법원
입력 2015-07-17 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