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아무리 보잘것없이 보여도 각자의 서식 영역에서는 나름대로 1등인 종이다. 때로는 경쟁하는 비슷한 종들을 물리치거나 불리한 경쟁을 피해가고, 다른 종과 공생하기도 해가면서 독특한 생태적 지위, 그 종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한 것이 현존하는 생물들이다. 멸종은 종간 경쟁에서 패배의 완결판이다.
멸종위기 1급 동물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 역시 이런 경쟁을 거치면서 수백만년의 세월을 살아 남았다. 산양은 거의 수직의 절벽도 날다람쥐처럼 뛰어다닌다. 늑대와 같은 포식동물의 공격을 따돌리고, 비슷한 생태적 지위에 있는 염소, 야크, 야생마 등과의 경쟁을 비켜가면서 자신만의 왕국을 유지해 온 것이다.
양양군과 강원도, 그리고 정부가 설악산 오색약수터부터 대청봉 가까운 곳까지 오색케이블카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오색케이블카 노선은 산양의 서식지여서 이 건설사업 허가 여부에서 가장 큰 쟁점이다. 남한 땅에 남은 산양은 겨우 800여 마리로 추정되는데 이 중 300여 마리가 설악산에 살고 있다.
양양군은 “케이블카 노선 예정지는 산양의 주요 서식지가 아닌 이동경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철새가 아닌 포유동물을 서식지와 이동경로로 구분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오색케이블카가 건설되면 이 일대의 산양은 양분되어 좁아진 서식지 내에서 먹이 구하기와 겨울나기가 어려워져 도태될 수 있다. 사람과 도로에 각각 200m와 1㎞ 이내에는 접근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한계령을 넘어가는 44번 국도를 건널 수도 없다.
환경부는 16일 오대산국립공원 노인봉에 산양 4마리를 방사함으로써 백두대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산양 복원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로써 오대산 산양은 40마리로 늘어났다. 다같이 환경부가 펼치거나 인허가를 맡고 있는 일인데 설악산에서는 산양을 몰아낼 사업을 허가하려 하고, 오대산에서는 산양 개체수를 안정적 수준까지 늘리겠다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설악산 산양과 오대산 산양
입력 2015-07-17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