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국 3곳뿐인 ‘무장애놀이터’… 장애아들이 뛰놀 놀이터가 없다

입력 2015-07-17 02:35 수정 2015-07-17 08:52
독일 다름슈타트의 무장애 통합 놀이터에서 5월 한 소녀가 요람 형태의 그네를 타고 있다(왼쪽). 미끄럼틀은 타고 내려오자마자 휠체어에 앉을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무장애연대 제공

“저시력증까지 있는 우리 애한테 아파트 놀이터는 위험하죠. 또래 애들도 잘 놀아주지 않고요.”

지적장애를 가진 아름(가명·11·여)이가 ‘놀게’ 하려고 어머니는 매일같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실내놀이터에서 입장 거부도 당해봤다”며 “입장해도 비장애아동과 그 부모들이 불편하게 바라봐 오래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름이 어머니는 매일 1시간씩 차를 몰아 서울 은평구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실내놀이터 ‘아이마루’를 찾는다. 아름이가 눈치 보지 않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평일 낮에는 놀이 지도 선생님과 함께 또래 장애아동 5, 6명과 어울리고 토요일엔 비장애아동과 함께 트램펄린에서 뛰어노는 게 아름이의 낙이다. 비장애아동은 복지관에서 장애인식개선 인형극을 보고 책을 읽으며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노는 법을 배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배려해 만들어진 놀이터는 거의 없다. 전국 6만여개 놀이터 중 처음부터 장애아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조성된 ‘무장애놀이터’는 국회 어린이집, 서울숲, 어린이대공원 3곳에만 있다. 여기 아이마루처럼 전국 장애인복지관에 설치된 실내놀이터를 더해도 10개 정도에 그친다.

비장애아동과 ‘함께’ 어울리기는 더 어렵다. 2008년 국회 어린이집에 문을 연 ‘애벌레의 꿈’ 놀이터는 일반 놀이터에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그네 등 몇 개의 시설을 추가한 수준에 불과하다. 2006년 서울숲에 생긴 ‘거인의 나라’ 놀이터에선 휠체어를 타고 동굴과 미로를 탐험할 수 있지만 비장애아동의 흥미를 끌기엔 시설이 지나치게 단순하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무장애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현재 무장애놀이터는 장애아동이 쉽게 이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소리 나는 의자’ ‘온도가 변하는 벽’ 등 감각적인 놀이기구 위주로 구성된다”며 “야외놀이터 특유의 활동성과 역동성을 살린 놀이기구가 부족해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놀이를 매개로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데 취학 전 놀이터에서부터 이들을 분리해 ‘장벽’을 만드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무장애통합놀이터’를 확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장애통합놀이터는 장애아의 접근권과 안전을 보장하면서 비장애아가 함께 놀 수 있게 만들어진 놀이터를 말한다. 독일 미국 영국 등에선 무장애통합놀이터를 따로 구분하지 않을 만큼 자리 잡힌 상태다.

독일 다름슈타트 슈타인브루커 호수공원 놀이터가 대표적이다. 놀이터가 한눈에 들어와 보호자가 아이들을 돌보기 쉽고 놀이터 바닥 전체에 모래가 깔려 있지만 일부에 콘크리트, 흙, 탄성포장재를 깔아 휠체어가 출입할 수 있게 했다. 높이 조절이 가능한 손잡이와 다양한 형태의 그네도 설치했다.

이영범 경기대 대학원 커뮤니티디자인연구실 교수는 “특정 작가의 디자인이나 장애아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물을 중심으로 구성된 국내 무장애놀이터와 달리 무장애 ‘통합’ 놀이터는 장애·비장애, 연령층, 성별을 떠나 모두가 대등하게 즐길 수 있도록 사람 중심으로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도 첫 번째 무장애통합놀이터가 생긴다. 무장애연대는 대웅제약, 아름다운재단, 서울시설공단 등과 함께 12월 완공을 목표로 서울 어린이대공원 ‘오즈의 마법사 놀이터’를 무장애통합놀이터로 바꾸는 공익사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비장애아를 위해 기구를 역동적으로 설계하고 미끄럼틀과 그네 등을 높게 설치하면 장애아 부모들의 염려가 커진다. 휠체어 타는 아이의 어머니는 딱딱한 바닥을 원하지만 지적장애·발달장애 아동의 어머니는 이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상충하는 입장을 조율하는 원칙은 이용자 의견을 반영하는 ‘참여디자인’이다. 비장애아 위주로 운영되는 어린이대공원 어린이위원회 의견을 받아보고, 장애아와 부모, 특수교사 등과의 좌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장애아동이 노는 모습을 관찰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배 사무총장은 “무장애통합놀이터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새롭고 재미있으면서 안전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선 더불어 놀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수민 고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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