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 떠 있던 파란 하늘 뒤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장대비가 쏟아진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비좁은 산간 도로엔 어느새 물골이 생기고 양손에 물통을 든 소녀가 생기를 되찾은 초목 사이로 비에 온몸을 적셔가며 댐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동쪽으로 68㎞ 떨어진 블라칸주 노자가레이시에 위치한 앙갓(Angat)댐. 마닐라시 수돗물의 98%를 공급하는 필리핀에서 가장 중요한 다목적 댐이다. 댐이 건설되면서 고향을 잃고 댐 주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주거지가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이들에게는 전기는 물론 상수도조차 공급되지 않는다. 주민 대부분은 앙갓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나 새를 곡물과 물물교환해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로 더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추구하는 K-water(수자원공사)는 지난해부터 앙갓댐 주변 마을에 관정을 파 물탱크를 설치해주고 태양광 패널 전등을 가설하는 한편 의료봉사까지 병행하는 주민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도 K-water 임직원 자원봉사단과 대학생 서포터스로 구성된 24명의 봉사팀이 국제 민간단체 ‘기아대책’과 함께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5일까지 앙갓댐 인근 마을을 찾았다. 지난달 초 이곳을 다녀간 1차 봉사팀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다.
봉사활동 첫날 로렌조 마을의 다이크초등학교를 찾은 봉사대원들은 섭씨 40도에 가까운 무더위와 씨름하며 80여명의 어린이들을 위해 미니 올림픽을 열었고, 교육 봉사와 빈곤가정 방문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천사 같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 순박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위해 한 가지라도 더해주고 싶은 마음에 쏟아지는 땀을 훔칠 시간조차 부족해 보였다.
이틀째부터는 무존 지역으로 이동해 재건축 중인 벧엘유치원의 외벽을 꾸며줄 벽화를 그렸다. 현지 전문업체를 통해 진행한 식수개발사업 마무리 작업을 돕기도 했다. 3000여명이 재학 중인 직업전문학교 내셔널트레이드스쿨에서는 120여대의 선풍기를 찜통교실에 달아줬고, 우물 개발과 식수대 설치 작업도 진행했다.
봉사팀이 준비한 프로그램마다 현지 학생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물자동차가 운동장을 달리고 하늘을 향해 물로켓을 쏘아 올리는 과학실험과 한국 아이돌 스타의 노래와 춤을 가르쳐주는 ‘K팝 스타 따라잡기’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스키장 사진을 배경으로 눈 스프레이를 뿌려가며 기념촬영을 하고 사진을 일일이 액자에 넣어준 것도 눈을 본 적 없는 학생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농구를 즐겨하는 필리핀 학생들을 위해 부족한 농구 실력과 무더위에 바닥난 체력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이 최선을 다하자 관람석의 학생들은 하나가 된 듯 열띤 응원을 보냈다.
“안녕, Picture tayo(함께 사진 찍어요)!”
필리핀 학생들은 봉사기간 내내 대원들에게 다가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사진을 찍고 사인을 요구하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봉사활동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그들은 색동옷을 차려입은 대학생 서포터스들이 선보인 꼭두각시 춤과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율동에 열렬히 환호했다. 젊은 남녀 봉사대원들의 인기는 한류스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봉사 마지막 날인 지난 4일에는 전교생이 노천강당에 모여 마음을 담아 환송식을 열었다. 떠나는 봉사대원 버스를 향해 학생들은 교문까지 따라나서며 손을 흔들거나 하트 표시와 입맞춤을 보냈다. 작은 것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학생들을 뒤로하며 봉사대원들은 더해주지 못한 아쉬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거제물사랑나눔단의 코디로 활동해 온 구인옥(44·거제관리단) 과장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왔는데 큰 기쁨과 더 많은 사랑을 받고 돌아간다”면서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봉사단원의 손놀림 하나하나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오랫동안 가슴 깊이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서포터스로 참가한 김철호(23·금오공대 전자공학과) 대원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주민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면서 “정말 행복한 일주일이었다. 앞으로도 봉사하는 삶을 이어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블라칸주(필리핀)=kkkwak@kmib.co.kr
[앵글속 세상] 빗속을 뚫고 또 나섰다, 소녀에게 식수는 생명이었다
입력 2015-07-17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