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직위표는 특이하다. 박원순 시장 위에 한 칸이 더 있다. 바로 ‘시민’이다. 시민을 주인으로 섬기며 시정을 펴겠다는 박 시장의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박 시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해 “권력은 봉사하는 것(Power is absolute service)”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을 섬기기 위해서는 시민들과의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서 서울시 직제상에도 ‘시민소통기획관’이 있어 시민과의 소통 업무를 관장한다. 이처럼 박 시장은 시민들과 소통을 핵심 철학으로 삼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실행하는 시 공무원들은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서울시가 주요 정책에 대한 시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한 토론회나 공청회에 가보면 불통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주제발표자와 토론자 구성이 찬반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시 정책을 지지하는 전문가나 교수 위주로 짜여 있다. 그러다보니 시 정책에 비판적인 시민들은 토론회가 시 정책을 합리화하는 요식절차에 불과하다고 질타한다. 서울역고가 공원화 사업 토론회가 대표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울시는 정책을 발표할 때 토론회나 공청회를 열어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는 식으로 선전한다.
토론회나 공청회를 위한 사전 준비도 미흡하다.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지려면 당국이 기본 정책 방향을 먼저 제시해야 그에 대해 전문가들이 실효성과 타당성을 따지고 시민들도 현실적인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토론회는 정책의 밑그림이 전혀 제시되지 않아 뜬구름잡기 식의 원론적 논의에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열린 ‘남산 예장자락 어떻게 가꿀 것인가? 대시민 공개토론회’가 그랬다. 분명 대시민 공개토론회라고 했는데 4시간여 동안 전문가 주제발표와 토론 외에 일반 시민이 발언한 시간은 20여분에 불과했다. ‘그들만의 토론회’였던 셈이다. 주민들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서울시의 정책을 설파하는 전문가들의 주제발표를 그냥 들어야 했다. 일방통행식 토론회에서 소통이 될 리가 없다.
대중교통 요금체계 개선 공청회 역시 서울시가 진정한 소통보다는 형식적인 절차에 집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시민사회는 ‘서울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근거해 만 19세 이상 시민 5210명의 서명을 받아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것인지 점검하는 공청회를 열자고 지난달 4일 서울시에 제안했다. 하지만 시는 공청회 개최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라며 거부해 오다 돌연 입장을 바꿔 9일 공청회를 열겠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와중에 급하게 개최하려던 공청회는 ‘졸속 공청회’라는 거센 반발에 부닥쳐 결국 무산됐다.
박 시장은 지난달 4일 심야 기자회견을 열어 메르스와 관련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그런 박 시장에게 많은 시민들이 지지를 보냈던 이유는 뭘까. 소통의 힘이다.
민선 6기 재선에 성공해 2년차에 접어든 박 시장이 초선 때와 달리 몸이 무거워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박 시장이 진정 ‘소통의 리더십’을 추구한다면 행정편의적인 공무원들의 ‘인(人)의 장막’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시민단체의 진영 논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오직 현장에서 걸러지지 않은 시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늘 강조해온 박 시장에게 직접 토론회에 한번 가볼 것을 권한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
[세상만사-김재중] 열린 소통과 그 적들
입력 2015-07-17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