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여간 한 명의 메르스 환자가 대형병원 몇 곳을 무너뜨렸다. 메르스 여파로 병원만 손해를 입은 것이 아니다. 메르스 한 명의 환자가 다녀간 병원은 외래, 입원, 응급실 진료를 중단하고 임시 폐쇄 조치되면서 해당 병원을 이용하던 환자는 갈 곳을 잃었다. 특히 강동성심병원, 강동경희대병원, 건국대병원 등이 비슷한 시기에 응급실과 외래진료를 중단하는 바람에 강동구 지역에서의 의료공백은 심각했다. 5세 여아를 둔 부모는 한밤중 아이가 아파도 갈 곳이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부모의 경우 한밤중 아이가 아프면 집에서 20㎞ 떨어진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대형병원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부득이하게 병원을 옮겨야 하는 환자들이 발생했다. 특히 암환자가 매우 곤란한 상황이 됐다. 매주 또는 2주에 한 번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다녔던 환자는 자신이 다니던 병원의 폐쇄로 정기적인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주치의는 항암치료가 한 주 늦춰져도 괜찮다며 환자를 안심시켰지만, 환자 마음이 의사와 같을 리 없다. 만약 몸 상태가 안 좋아진다면 한 주 늦어진 암치료 때문일 것이라고 주치의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결국 유방암 환자 김순희(55세)씨는 주치의에게 당분간 병원을 옮기고, 옮긴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옮겨간 병원에서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주치의를 다시 찾았다. 환자 말에 따르면 옮긴 병원에서 자신을 마치 감염병 환자처럼 추궁하며 메르스 가능성이 없다는 증명자료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해당 병원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요구였을지 모른다. 신중하지 못한 배려가 또 다른 무수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치 않은 마음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문전박대까지는 아니어도 이것저것 조사하듯 물어오는 병원의 태도에 암환자는 서운함을 느꼈고 결국 치료를 미루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김씨의 주치의는 “병원 간 협조가 구두로 협의됐지만 이는 서울시가 나서거나 보건당국이 나서야 하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메르스가 할퀴고 간 대한민국은 서른여섯 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메르스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갑작스런 진료공백으로 당장 먹을 당뇨약과 혈압약이 없어 혼란에 빠진 만성질환자들이 발생했고, 치료가 급한 암환자들은 정기적인 암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인근 병원들이 나서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고 환자들이 겪을 혼선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역부족이었다. 대형병원이 감염병 하나로 쓰러지자, 그곳을 다닌 환자들도 덩달아 난민 신세가 된 모양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는 “본원의 환자를 의뢰한 타 병원에서는 (메르스) 위험도를 평가해 안전하다고 판단이 들 때 환자를 받겠다고 답변해 왔다. 그 위험도 평가라는 것이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이라 환자를 의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르스로 잃은 것을 따질 때 희생자와 경제적 손실만 따져선 안 된다. 제2의 메르스는 또 올 것이다. 신종 감염병으로 한 지역에서 의료공백 현상이 빚어질 때 환자와 병원의 혼선을 최소화할 진료체계, 병원 간 의료협진체계를 구축해 놓아야 한다.
kubee08@kukimedia.co.kr
[김단비 기자의 암 환자 마음읽기] 갈 곳이 없어진 메르스 병원 암환자
입력 2015-07-20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