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전투기 사업에는 18조원이라는 막대한 국방비가 투입되는데, 누군가의 부모나 자식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암(癌) 치료비에는 4조원에 불과한 투자가 이뤄진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는 암이다. 이러한 암 치료에 투입되는 건강보험 진료비는 지난해 기준으로 4조2777억원에 달했다. 언뜻 보면 상당히 큰 액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암 관련 진료비에 쓰이는 돈은 정부에서 국방력 강화를 위해 쓰이는 무기 몇 대 값에 비하면 극히 적은 액수다. 이를 두고 한 업계 관계자는 “사람 수백명의 목숨이 전투기 한 대 값에도 못 미친다”며 “정부가 건강보험 진료비 중 암 관련 비용에 쓰는 돈이 그만큼 적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어린 자식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어떨까. 암 판정을 받게 된 당사자와 가족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며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치료효과가 뛰어난 치료제 등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또 한번 절망에 빠진다. 정부의 예산이 그만큼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는 수치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 건강보험 진료비 55조원 중 암 관련 건강보험 진료비는 4조2777억원이었다. 암상병별 진료비 현황에 따르면 입원 진료비는 폐암 3174억원, 간암 3069억원, 위암 2687억원 순이었다. 외래 진료비는 유방암 3002억원, 갑상선암 1458억원, 폐암 1359억원 순이었다. 일례로, 우리나라 사망률 1위로 알려진 폐암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55조원 중 폐암에 사용된 돈이 4533억원으로 전체 암 진료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환자가 암을 이겨내는 데 있어 ‘항암제’ 치료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은 적은 편이다. 국회 예산 정책처의 ‘2014 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 평가’에 따르면 요양기관에 공급된 항암제 규모는 1조341억원이며, 건강보험에 청구된 항암제 약제비는 2014년 8231억원이다. 2014년 비급여로 공급된 항암제 약품비는 최대 211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정부가 생명과 직결된 약품비에 사용하는 예산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지난 2014년에 청구된 총 약제비가 13조원에 달하는 것에 비해 항암제의 약제비가 8000억원가량 사용된 것을 살펴보면 여전히 항암제는 건강보험제도 내에서 충분히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약사가 획기적인 신약을 개발해 국내에서 허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환자에게 비급여로 사용될 경우에는 고가이기 때문에 가격 부담이 크다. 그러면 정부의 보험급여가 이뤄지길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건강보험이라는 한정된 재정 안에서 다른 질환자들과의 형평성, 비용경제성 등을 고려해 약값을 낮추려고 하기 때문에 새로운 신약이 나와도 허가 사항이 까다롭다.
일례로 잴코리 등의 항암제도 획기적인 신약으로 알려져 있지만 환자들이 자비로 먹어야만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 밖에도 최근 면역항암제 등이 획기적 치료제로 급부상하고 있으나, 비보험으로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지난 몇 년간 의약품 혁신을 통해 신약이 개발돼 환자들에게 사용되면서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13.8% 감소했다. 정부가 암과 관련해 건강보험 급여적용을 확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암에 걸렸는데도 값비싼 치료비, 약제비로 생명 연장을 포기해야 한다면 이보다 더 절망적인 일이 있을까.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 한 환자는 “정부가 말로만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건강과 직결된 사안에 대한 예산 사용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기획 리포트] 비싼 약값 때문에 생명 포기해야 하나
입력 2015-07-20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