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의 동행] 조용한 시한폭탄 ‘석면 노출’ 학교… 병원… 노인시설… 건강 약자엔 또 하나의 공포

입력 2015-07-20 02:17
우리 아이들이 위해물질에 노출돼 있지만 개선은 예산문제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슴)

질병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는 시설에서 석면이 검출돼 국민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을 핑계로 개선을 미루고 있다는 주장이다. 침묵의 살인자,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석면은 1급 발암물질로 15∼40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 악성중피종, 석면폐 등을 유발한다. 석면이 유발하는 대표 질환인 악성중피종의 경우 석면 노출에 의한 기여도가 80∼90%에 달하는데 일시적 노출이나 간접 노출로도 생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런 석면이 유치원을 비롯한 교육시설부터 의료·장애·노인시설까지 성장기나 건강에 취약한 사람들이 활동하는 곳에서 검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새정치민주연합 김영주 의원이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청을 통해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석면이 검출된 서울시 초등학교가 전체의 83%에 달했다. 또 조사대상 학교 중 석면자재 비율이 전체 건축연면적 대비 50% 이상인 학교가 161개교에 달했고, 석면자재가 하나도 없는 ‘클린 학교’는 41개교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교육부가 제출한 자료에서도 2012년 12월 기준 전국 초중고의 88%인 1만7265개 학교에서 석면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고, 석면 농도도 법적 기준치의 20배에서 최고 50배를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11년부터 2014년 6월까지 12명(평균 재직기간 27년)의 교사가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른 석면질환자로 인정받았는데 9명이 ‘악성중피종’, 3명은 ‘석면폐’였으며 이 중 9명(2014년 9월15일까지)은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대학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는데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이 교육부의 국립대학 석면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학교를 포함한 전국 40개 국립대학에서 석면이 검출됐고, 그 면적도 건물 전체의 2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대학 내 어린이집 천장에서도 사문석 계열의 ‘백석면’이 검출됐는데 대다수 어린이집이 석면자재 사용이 많던 1990년대에 준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 석면으로부터 영유아의 건강보호를 위한 ‘어린이집 석면관리지침’을 지자체에 통보한 바 있다. 모든 어린이집 건축물에 대해 석면조사를 실시토록 하고, 석면에 의한 피해가 예상되는 어린이집에 대해 개·보수를 지원하도록 했다. 또 조사 결과 석면이 함유된 건축자재를 시급히 교체할 필요가 있는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각 지자체별로 기능보강예산이나 환경개선 융자금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환경보건시민센터,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서울대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12개 수도권 주요 대학병원에서 석면이 들어간 천장재 등을 사용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병원의 경우 질병에 취약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인만큼 위험이 더 크다.

한편 석면안전관리법(2012년 4월 29일 시행)에 따르면 2008년 12월 31일 이전에 착공신고를 한 500㎡ 이상인 공공건축물과 다중이용시설, 학교, 어린이집 등의 소유자는 법 시행 후 2∼3년 내에 석면조사기관에 의뢰해 건축물 내 석면건축자재의 위치와 석면비산가능성을 파악토록 하고 있다. 문제는 석면을 관리하는 담당 부처가 분산돼 있다는 점인데 석면의 제조·수입·생산의 경우 3개 부처가 담당하고, 석면함유 건축물은 5개 부처, 석면 해체·철거는 2개 부처, 폐석면 처리는 환경부가 담당하도록 하고 있어 통합관리가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석면의 사용이 지난 2009년부터 금지됐는데 1990년대 가장 많이 소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잠복기를 거쳐 2030년 이후 석면으로 인한 환자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어 조치가 시급하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순차적으로 석면자재를 교체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산문제로 빠르게 진행되지는 못하고 있다. 울산시교육청을 예로 들면 최근 석면 천장이 있는 학교 중 교체가 시급한 8곳에 대해 올해 우선 교체키로 했지만 시 교육청이 지난해 파악한 석면 천장 학교는 436개 유·초·중·고교 중 294개교(67.4%)에 달한다. 이들 학교의 석면 천장을 모두 교체하려면 약 1600억원의 비용이 필요한데 올해는 32억여원의 예산을 확보해 천장파손·처짐·얼룩이 심해 미관상 불안감을 주는 학교에 대해 우선 교체에 나선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로 전라북도에도 1277개 학교 중 783개교에서 석면건축물이 확인됐지만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8개 학교에 대해서만 석면을 제거했을 뿐이다.

앞서 김영주 의원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학교에서 제거되지 않는 이유는 학교환경시설개선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라며 “교육부가 제출한 교육환경개선시설 예산과 실제 석면철거예산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서울시 교육청 교육환경개선시설 예산은 1조원이 넘지만 석면철거예산은 고작 72억원에 불과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석면에 노출된 아이들이 수십년 후에 질병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빨리 예산을 확보해 석면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민규 기자 kioo@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