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사라진 고생대 동물 ‘매머드’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생명과학계에서 볼썽사나운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당사자는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으로 서울대에서 파면된 황우석 박사(현 수암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와 박세필 제주대 교수를 포함한 줄기세포 연구자 3명이다.
서울남부지검은 황 박사 측 수암생명공학연구원과 러시아 극동연방대학이 지난달 18일 박세필 제주대 줄기세포연구센터장, 정형민 건국대 줄기세포교실 교수, 김은영 미래셀바이오 대표를 횡령과 공갈미수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고 15일 밝혔다. 극동연방대학은 황 박사에게 매머드 사체 조직을 제공한 공동 연구기관이다. 검찰은 지난달 말 고소인 조사를 마쳤고, 14일 정 교수와 김 대표에 대한 피고소인 조사도 벌였다. 아직 박 교수 조사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갈등은 매머드 복원과 관련한 최근 연구 성과의 소유권을 놓고 빚어졌다. 황 박사가 몸담고 있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은 2012년부터 경기도에서 5년간 24억원을 지원받아 시베리아 매머드 등 멸종위기 동물복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매머드는 약 480만년 전부터 4000년 전까지 지구에 존재했던 포유류다. 긴 코와 4m 길이의 어금니를 가져 현대 코끼리의 조상으로 추정된다. 혹심한 추위에도 견딜 수 있게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었지만 마지막 빙하기에 멸종했다.
황 박사가 추진한 매머드 복원은 그동안 태어난 복제동물과 같은 ‘체세포복제 방식’이다. 먼저 시베리아 동토에서 찾은 매머드 사체에서 DNA가 잘 보존된 체세포(피부세포 등)를 분리·배양한 뒤 생물학적으로 매머드와 가장 유사한 코끼리 난자에 이식해 융합한다. 이렇게 형성된 수정란을 대리모 코끼리의 자궁에 착상시킨 뒤 임신기간을 거쳐 출산케 한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2012년 러시아연방 사하공화국의 수도 야쿠트 및 야나강 일대에서 얼음과 땅속에 묻혀 있는 매머드 사체 조직을 발견해 연구를 진행해 왔다. 국내외 30여개 연구팀과 함께 이 조직에서 DNA가 온전한 체세포 추출을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머드 복원의 ‘첫 관문’조차 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연구에 참여한 정 교수 등 줄기세포 연구진 3명이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를 이뤄내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정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1월 황 박사로부터 매머드 조직을 나눠줄 테니 연구해 보라는 식의 말을 전해들은 뒤 지난 3월 중순 예고 없이 택배로 ‘크기 4㎝ 정도 매머드 사체 조직’이 연구실로 배달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바짝 마른 육포인 줄 알았다. 매머드 조직은 우리가 먼저 요청하지도 않았고, 연구비를 받거나 공동 연구를 위한 정식 물질양도각서(MTA)를 맺은 것도 아니었다”면서 “박 교수, 김 대표 등과 함께 세포 분리·배양을 시도했는데, 세포가 잘 자라난 것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혹시나 해서 미국 플로리다의 탄소연대추정 전문 바이오기업에 의뢰해 배양에 성공한 세포가 3만2000년 전 것임을 확인까지 했다. 이는 매머드 복원의 가장 큰 난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황 박사는 시베리아에서 들여온 매머드 조직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고, 자신이 세포 분리·배양 연구를 해보라고 한 것인 만큼 당연히 연구성과는 자신에게 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 교수 등은 “황 박사가 조직을 넘겨 줄 때 연구 성과물에 대한 아무런 계약조건이 없었던 데다 우리만의 독보적 세포배양 기술이 있었기에 세포 추출이 가능했던 만큼 양측 공동 연구성과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수암생명공학연구원 측은 “검찰 조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냈다.
과학계는 “논문으로 발표해 과학적 평가를 받아야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할 일이 아니다”며 양측 모두에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또 어렵사리 체세포 추출에 성공해 연구의 첫발을 뗐더라도 매머드 복원까지는 ‘산 넘어 산’이란 지적이 나온다. 매머드의 체세포를 이식할 코끼리 난자를 채취하는 작업, 이렇게 만들어진 수정란을 품어줄 대리모 코끼리를 구하는 일 등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한 생명과학자는 “설사 체세포복제에 성공하더라도 정상 수정란으로 성장할지, 나아가 복제 매머드가 탄생하더라도 지금 환경에 적응해 생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전망했다.
민태원 황인호 기자
twmin@kmib.co.kr
희대의 ‘매머드 소송戰’
입력 2015-07-16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