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日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도쿄예술대학교수 “한국과 일본, 언제나 함께 살아갈 이웃…”

입력 2015-07-16 02:35
일본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 도쿄예술대 교수. 그는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양국 예술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C) T. Aoki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한·일 관계가 지금은 좋지 않지만 양국 국민은 언제나 함께 살아갈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연극계에 일본 연극 붐을 일으킨 시발점이 된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53·사진) 도쿄예술대학 연극과 교수가 양국 합작연극 ‘모험왕’(10∼14일)과 ‘신(新)모험왕’(16∼26일 이상 두산아트센터)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작품은 그가 이끄는 극단 세이넨단과 한국의 극작가 겸 연출가인 성기웅의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가 같이 만들었다.

1996년 일본에서 초연된 ‘모험왕’은 80년 터키 이스탄불의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당시 일본인의 초상을 그렸고, 히라타와 성기웅이 그 후속으로 함께 쓴 신작 ‘신모험왕’은 한일월드컵이 있던 2002년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모험왕’에는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본 여행자들의 대화 속에 잠깐 등장한다.

‘신모험왕’에선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된 한국과 일본 여행자가 양국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 경기를 TV로 관람하는 광경이 핵심이다. 특히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을 소재로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된 이유를 짚어낸다.

히라타는 “당시 일본인들은 터키에 패배한 후 한국을 응원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밀리던 한국이 동점골을 넣은 순간부터 뭔가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됐다. 곧이어 한국이 역전골을 넣자 인터넷에선 한국이 심판을 매수했다는 소문이 퍼졌다”며 “일본인들은 한국이 자신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우호적이지만 일본보다 조금이라도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대 이후 100여년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에 올라 있던 일본은 최근 10여년 새 한국과 중국이 동등한 위치에 올라왔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아베 신조 총리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일본에서 재특회를 중심으로 한 혐한이 기승을 부렸지만 그는 한·일 관계가 그렇게 비관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한파로 유명한 그는 “대학 시절 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술자리만 가면 늘 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양국 국민들은 서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게다가 일본 내에서도 혐한은 최근 잦아드는 추세다. 원래 다른 사람 뒷얘기하는 게 처음엔 재밌지만 자꾸 들으면 싫어지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관계가 악화된 지금이야말로 양국 지식인과 예술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 대중의 경우 아무래도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면서 “따라서 양국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서로 어떻게 이웃으로 잘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