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견공들의 피서

입력 2015-07-16 00:10

한국의 견공(犬公)들에게 여름은 잔인하다. 특히 폭염의 삼복(三伏) 은 공포의 날들이다. ‘복(伏)’자가 사람 ‘인(人)’변에 개 ‘견(犬)’자를 쓴 것에서 굳이 유추할 수 있듯이 선조들은 복날에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 ‘복날 개 패듯 한다’ ‘삼복 기간에 개 판다’는 속담에는 개들의 수난사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 무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탁족(濯足), 회음(會飮)을 하면서 ‘복달임’인 개고기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기록된 옛 문헌도 많다.

원래 구장(狗醬), 구탕(狗湯)으로 불렸던 보신탕은 요즘도 인기 보양식의 하나다. 그러나 갈수록 퇴조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 500여 곳이던 서울의 보신탕집은 지금 300여 곳으로 줄었다고 한다. 보신탕을 혐오식품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진 데다 애견 인구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원래 개는 가축으로 취급됐으나 이제는 ‘애완’ ‘반려’의 관계를 넘어 거의 ‘가족’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애견협회는 국내의 애견 수는 350만 마리, 시장 규모는 1조원 정도로 추정했다. 애견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른바 ‘포펫(for-pet)’족이 늘면서 판촉 전략에서도 주요 타깃이다.

여름 바캉스용품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 옥션에 따르면 최근 한 달(6.11∼7.10) 동안 애견 바캉스용품 판매는 전년 대비 48% 늘었다. 카시트·안전벨트와 캐리어·유모차는 각각 262%, 195% 폭증했다. 전용 선글라스인 ‘도글라스’,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 해충방지 스프레이, 햇볕 차단 우산, 목 체온 저하용 쿨 스카프 등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어지간한 사람 못지않은 호사를 누린다.

이러다 견공보다 못한 여름휴가를 보내는 건 아닐까 은근 걱정이다. 부러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피서 계획을 다시 한번 꼼꼼히 챙겨보자. 잠시나마 메르스 근심도, 헌법 1조 1항의 가치도 잊고 혹서를 피해 떠나야겠다. 벌써 마음이 설렌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