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동훈] 우리은행 매각, 발상을 바꿔라

입력 2015-07-16 00:30

정부가 우리은행 민영화에 또 도전한다. 이번이 벌써 5번째다. 그런데 어떻게 팔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우리은행 매각 관련 간담회를 열었으나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예금보험공사가 매각 관련 시장 수요 점검을 했지만 잠재적 매수 후보자들은 “매각 방식도 모르는데 어떻게 투자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간담회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이달 중 우리은행 매각 방식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이후 소집돼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던 것이다.

확실한 인수 주체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넘겨주는 방식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차 매각 시도 때 중국 안방보험이 홀로 입질했으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유효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퇴짜를 놨다. 교보생명의 경우 외환위기 때 기업체 지원에 인색했다는 ‘과거사’ 때문에 아직도 정부는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사모펀드에 넘기는 방안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까지 벌이고 있는 외환은행 전 대주주 론스타와의 악연 때문에 더욱 실현 가능성이 멀어졌다.

정부 쪽에서는 우리은행 매각이 어려운 데 대해 자꾸 남 탓을 한다. 우리은행 PBR(주가 순자산비율)이 0.37배로 신한은행(0.69배) KB국민은행(0.52배) 하나은행(0.40배) 등 경쟁 은행보다 낮고 기업가치(주가)도 1만원 미만으로 한참 처져 있음을 들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는 이유로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내려보내고 경영간섭과 관치금융의 칼날을 휘둘러온 것이 오늘의 우리은행을 낳았다고 입을 모은다. 더욱이 정부는 우리금융 덩치가 너무 커 매수 주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투자증권, 우리자산운용, 우리아비바생명 등 알짜 계열사들을 다 팔아치웠다. 초저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는 상황에서 낮은 예대마진으로는 은행 홀로 생존을 이어가기가 힘든 상황임을 정부가 간과한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 은행과 증권, 보험사가 한데 모여 협업하는 복합점포를 허용해줬다. 우리은행 팔다리를 다 자르고 고사(枯死)시키면서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와 기업가치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요즘 부상하고 있는 것이 특정 주주에게 경영권을 넘기지 않고 소수 주주에게 지분을 나눠 파는 과점주주 방식이다. 또 금융권에서는 정부 지분 51.08% 중 20%가량만 남기고 30%가량을 다수 투자자에게 우선분할 매각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이후 민영화 진행 경과를 보면서 나머지 20%를 팔면 민영화 프리미엄에 따라 가치가 배 이상 올라갈 것이라는 논리다.

정부가 대주주의 지위를 이용해 외환위기와 카드사태 등으로 부실이 쌓인 기업의 채무 탕감이나 워크아웃에 동원하기 가장 쉬운 곳이 우리은행이었다. 과다한 부채로 스러질 뻔했다 구제를 받고 이제는 정상영업을 하는 대우, 현대, LG 등 유수그룹의 전(前) 계열사들에 그간 국민들에게 진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국민들 예금 받아 번 돈으로 살아난 기업들이 혈세가 들어간 우리은행의 지분을 사라고 하는 게 불가능한 요구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임금 인상에 쓰라는 기업소득환류세제보다 더 시장 친화적일 수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제한(4%룰)이 걸림돌이라면 의결권을 제한하면 된다. 공적자금 4조7000억원에 대한 이자를 매년 1000억원씩 혈세로 쏟아붓지 않아도 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이다. 정부가 우리은행을 진정으로 팔 마음이 있다면 현재의 낮은 주가 탓, 남 탓만 하지 말고 이런 식으로 발상을 바꿔야 한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