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로스쿨 출신 노숙인 포스텔씨의 안타까운 사연] 정신착란·무단침입… 어느 천재의 추락

입력 2015-07-15 02:20
워싱턴DC 17번가 인근을 배회하는 노숙인 알프레드 포스텔의 모습. 검게 그을린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그는 하버드대 로스쿨까지 나온 이력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오른쪽 사진은 그가 1979년 하버드대 로스쿨 학위를 받을 당시 모습.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지난 4월 초 어느 토요일 오후 미국 워싱턴DC 상급법원에서는 건물 무단침입 혐의로 기소된 한 나이든 노숙인이 보석 신청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와 다른 진술을 할 경우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서기의 말에 “내가 변호사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워싱턴에 있는 미국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79년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근무했습니다”라며 자신의 이력을 읊었다. 순간 재판정에 앉아 있던 토머스 모틀리 판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도 하버드대 1979년 졸업생이었기 때문이다. 판사는 이 남자를 잠시 지켜본 뒤 말했다.

“포스텔씨, 당신을 기억합니다.”

판사와 로스쿨 동기생이던 이 남자는 어쩌다 워싱턴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인이 된 걸까.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3일(현지시간)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노숙인 알프레드 포스텔(67)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포스텔은 워싱턴 북서부에 위치한 17번 교차로 인근에서 돌아다니는 노숙인이다. 그러나 그런 그가 존 로버츠 미국 대법원장, 러스 페인골드 전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등과 같은 해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인물이란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85세 노모 아파트 찬장에는 그의 대학 졸업장, 수상 증명서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는 회계학, 경제학, 법학 등 학위만 세 가지를 땄다. 어려서부터 집념이 강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스트레이어 칼리지에서 준학사학위(2년 다니고 받는 학위)를 받은 뒤 회계사 시험을 통과해 지역의 한 회사에 회계 매니저로 일했다. 그러다 메릴랜드주립대학에 진학해 경제학 학위를 받고 바로 하버드대 로스쿨까지 진학한 것이다.

한 동기생도 그가 단정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수업에 임했다고 회고했다. 로스쿨 졸업 후 그는 유망한 로펌에 취직해 세금 관련 분야에서 일했지만 돌연 회사를 떠났다. 아무도 그가 언제, 무슨 이유로 회사를 나갔는지 알지 못한다고 WP는 소개했다. 그의 동기생과 동료들은 모두 그의 근황을 듣고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다고 WP는 전했다.

다만 몇몇 동료들은 그의 오랜 정신질환이 회사와 가족을 돌연 떠난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어머니 역시 “포스텔이 한 여인과 안 좋은 결별을 한 뒤 정신착란증이 발병한 것 같다”고 추정할 뿐이다.

포스텔은 WP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지위를 잃어봐라. 지옥 같을 것”이라며 “난 이제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