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김모씨는 육아로 회사를 그만둔 지 3년 만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은행들이 하루 4시간 근무하는 시간제 일자리 채용을 발표하면서 다시 회사로 출근할 꿈을 꾸게 됐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가 클 때까지 손을 놓고 있으면 다시는 일자리를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계약직이란 게 마음에 걸렸지만 A은행에 지원서를 냈고, 면접을 본 뒤 합격 통지를 받았다. 경쟁률은 수십대 1에 달했다.
시간제 계약직이었지만 영업에도 적극 나서면서 땀을 쏟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뒤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뒤로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력단절여성(경단녀) 고용 확대를 주문하면서 은행권에서 경단녀 채용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계약직이거나 최장 2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는 일회성 자리가 대부분인 데다 당초 취지와 달리 근무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어렵사리 잡은 기회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은행의 경우 시간제 일자리는 보통 창구 업무를 담당하며 하루에 4∼5시간 근무하는 형태다. 급여는 적지만 육아에 쓸 시간이 필요한 경단녀들의 선호도가 높아 경쟁률도 치열하다. 지난해 신한은행 시간제 경단녀 채용 경쟁률은 100대 1이었고, 올해도 50대 1에 육박했다.
2013년 IBK기업은행이 109명을 뽑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기업 69명, 신한 220명, 우리 190명 등으로 확대됐다. 올해 신한은 지금까지 131명을 뽑았고 하반기에 추가 채용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연초 세웠던 계획을 수정해 경단녀를 수시로 330명까지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민과 농협은행도 경단녀 채용 대열에 올해부터 합류했다.
경단녀 채용 확대는 경제성장을 위한 여성인력 활용이라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평이다. LG경제연구원의 이혜림 선임연구원은 2013년 ‘여성 경력단절에 따른 소득손실 크다’ 보고서에서 연령별 여성고용률이 M형을 나타내 결혼 후 경력단절이 급속히 생겼다고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고용률은 64.9%지만 30대엔 55%로 6.9% 포인트나 떨어졌다.
문제는 계약직만 양산하는 현재 방식이다. 정규직으로 뽑는 신한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기업은행을 제외하면 다른 은행에선 1∼2년 정도 근무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은행은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해 최대 2년까지 연장해주고, 농협은행은 출산을 위해 휴직한 직원을 대체할 목적으로 6개월마다 계약을 한다. 국민은행은 시급제와 일급제로 뽑으며 계약기간은 각각 24개월, 10개월이다. 최우수인력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전환비율 등은 명시돼 있지 않다.
은행권 취업을 했거나 준비 중인 경단녀 사이에선 계약연장 비율과 무기계약직 전환 여부 등이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해 뽑은 시간제 일자리 계약기간이 곧 만료되는 우리은행은 최근 계약 연장 여부를 통보했다. 은행 측은 “구체적 수치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경단녀 직원 150명 중 20여명은 계약연장이 거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계약과 현실 간 괴리도 경단녀에게는 힘든 부분이다. 은행의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했지만 업무 특성상 4시30분 ‘칼퇴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은행에서는 영업시간 종료 이후 처리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시간만 채우고 퇴근할 경우 업무를 떠안아야 할 기존 직원들의 불만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의 경단녀 채용 확대가 이전 정부의 고졸채용 열풍과 비슷하게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명박정부가 고졸 채용에 드라이브를 걸자 은행들이 일제히 이를 따르다가 정권 말 이후 흐지부지된 것처럼 이번에도 정착되지 못하고 한번의 바람으로 그칠 것이란 우려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재취업 1년 만에 집으로… 두 번 우는 은행 경단녀들
입력 2015-07-15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