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마음이 짠하던 날

입력 2015-07-15 00:20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일이 하나 있다. 해외봉사단원에 지원하는 것인데 번번이 포기했던 이유가 자격증을 따야 했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어버린 나이가 망설이게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 그랬더니 한 친구가 대꾸했다. “시간은 네가 그걸 공부해도 흐르고 그렇지 않아도 흘러. 하고 싶은 걸 한다고 해서 네 시간이 줄어들진 않아.”

그 말이 나를 설득했다. 2년간 회사에 다니며 학점은행제를 신청했고 다리를 다쳤을 때는 목발을 짚고 실습에 참여했다. 결국 이번 여름 나는 해외봉사단원에 지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세 번째 관문, 서류를 취합해 보내는 일만 남겨두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부모님 동의서’다. 서른 중반이 지나버린 딸을 2년 동안 해외로 보내는 일을 과연 허락해주실까? 동의서를 위조하고 결과가 발표 나면 이야기할까 싶었지만 나도 한 번쯤은 부모님과 내 꿈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어제 대구를 다녀왔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마지막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짠하네”, 어머니는 “네게 기회가 되는 일이라면 가야지” 그러셨다. 결혼은 않고 무슨 소리냐 하실 줄 알았는데 두 분 반응이 예상과 달라서 나는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나는 두 분께 “고맙다” 말했고 엄마는 뭐가 자꾸 고맙냐셨다. “믿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려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기차 안, 엄마가 정성스레 써준 동의서를 한참 바라봤다. 친구에게 “내가 그간 우리 부모님을 잘 몰랐나봐”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누군가 해외에 몇 년간 가족이 다 나가야 하는데 홀어머니에게 어찌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 겨우 말했대. 근데 어머니가 그러신 거야. ‘내가 너한테 뭘 해주면 되겠니?’라고. 그 말을 듣고 아들이 펑펑 울었대. 부모님 마음을 어떻게 알겠니?”

“내가 부모님을 오해하고 살았나봐. 자식 낳기 전까지는 그 마음 모르겠지?”라고 친구에게 답장을 쓰는데 눈앞이 자꾸 흐려졌다. 마음이 짠해서.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