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는 과연 대선 공약을 뒤집는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수감 중이거나 전과자로 남아 있는 사회지도층 사면을 단행할 것인가. 청와대는 일단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이라는 두 가지 명분을 제시한 점에 비춰보면 광복절 특사 명단에 서민 생계형 사범 외에 다수의 기업인·정치인이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역대 사면 내역을 보면 법률적 판단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그 대상이 결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누가 굴레 벗을까=법무부는 13일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사면 대상 검토에 착수했다. 현재 사면심사위원 중 내부 위원은 법무부 김현웅 장관과 김주현 차관, 안태근 검찰 국장, 이금로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등 4명이다. 외부 위원으로는 이충상 변호사, 유광석 백석대 교수, 배병일 영남대 교수, 박창일 건양대 의료원장, 김수진 변호사 등 5명이 있다. 이 9명은 법무부 장관이 꾸린 명단을 토대로 광복절 전에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를 열 방침이다.
가장 먼저 대상으로 언급되는 경제인은 SK 최태원 회장이다. 최 회장은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013년 1월부터 현재까지 2년6개월째 수감돼 있다. 국내 재벌 총수로서는 최장기 복역 중이다.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은 최재원 SK 부회장도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다.
구자원 LIG 회장 삼부자도 사면 대상에 속한다. 구 회장은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장남인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은 징역 4년, 차남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징역 3년을 각각 확정받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김 회장은 지난해 2월 대법원 파기 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돼 석방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항소심 판결 후 대법원 상고가 이뤄져 일단 이번 사면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이명박정부 인사들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정봉주·홍사덕 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
◇“장수 발목 묶어서야”=대통령 의중을 예단하는 이유는 그간 법무부 사면심사위가 우선시한 가치가 ‘국익 공로’이기 때문이다. 사면 5년이 지나 법무부가 공개한 2008∼2009년 사면심사위 회의록을 보면 정치·경제인 등 특별고려 대상자의 사면 적정 이유는 대개 국익으로 표현돼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법무부는 2008년 8월 11일 사면심사위에 현대차 정몽구 회장, SK 최태원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등을 대상자로 올렸다. 정치인 12명이 선정된 데는 “국가발전 공로, 비리 정도, 형 확정 후 경과기간, 집행률, 추징금 납부 여부”가, 경제인 74명이 포함된 이유는 “경제발전 공로, 원상회복 노력, 형 확정 후 경과기간, 집행률, 추징금 납부 여부”가 고려됐다. 외부 위원들을 중심으로 주요 대상자의 특혜를 우려하는 분위기도 형성됐지만, 결국 사면심사위원들은 경제 살리기 차원이라는 대전제에 법무부 원안을 승인했다.
2009년 12월 24일 삼성 이건희 회장 1명의 특별사면을 검토한 뒤 적정 결론을 내린 명분도 국익이었다. 유일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잃게 되면 국가적 중대사안인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어려워진다는 논리였다. 당시 유창종 위원은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우리가 좀 미워도 세계무대에 나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며 “삼성 SK LG가 갖는 경쟁의 중요성은 우리나라 축구선수 주전 멤버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잘못한 부분을 수사하는 것은 좋지만 국익은 갑자기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다”고도 발언했다.
당시 국민수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은 “이건희가 아니라 IOC 위원에 대해, 국익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황희철 법무부 차관은 “우리가 물리적인 전쟁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다”며 “장수의 발목을 묶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당시 주철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은 “법원에서 많이 봐준 것 같은데, 법무부에서 또 봐주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찬성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국가 발전’ 명분 제시… 기업인 사면 길 텄다
입력 2015-07-14 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