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17시간에 걸친 긴 협상 끝에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 개시에 합의했지만 그리스와 나머지 18개국 모두 지난한 협상 과정에서 내상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3일(현지시간)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에 대해 “정상들이 만장일치의 합의를 봤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바로 몇 시간 전까지도 한시적인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필요성을 제기한 독일과 이에 반대하는 프랑스 간 팽팽한 대립과는 사뭇 대조되는 언급이다.
무엇보다 그리스와 유럽 정상들은 지난 5일 그리스가 국민투표까지 가는 상황을 막았어야 했다. 이는 유럽 전체의 컨센서스(합의)를 그리스가 가장 강력한 표시인 국민투표로 반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유럽의 ‘균열’이 전 세계에 드러났고 유로존뿐만 아니라 28개 회원국의 EU도 언젠가는 갈라설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화’와 ‘상생’ ‘통합’이라는 EU의 정신이 언제든 실력 대결과 대립, 분열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시킨 계기였다.
채권단 내부의 불협화음도 컸다. 우선 최대 채권국인 독일과 어떻게든 파국을 막으려는 프랑스가 대립한 것은 유럽 내부 또는 유럽 밖의 골치 아픈 일이 생길 때마다 협력해 온 두 나라의 기존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아울러 그렉시트를 감수하겠다는 북유럽 국가들과 그렉시트는 막아야 한다는 남유럽 국가들이 갈등을 벌이면서 사실상 유럽 대륙 전체가 충돌한 측면도 있다.
이런 충돌의 경험은 향후 더욱 긴밀한 유럽 통합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예정된 영국의 EU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 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울러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강요된 긴축’을 경험한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이 향후 추가적인 긴축에 반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독일이 막판까지 그리스에 대한 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자 “독일도 그 정도로 그리스를 닦달했으면 충분하다(enough is enough)”고 비판하기도 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그렉시트 막았지만… 내상 깊어진 유로존
입력 2015-07-14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