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력 돋보인 영화 ‘10,000㎞’] 멀어진 시간만큼 도망가는 사랑… 해법은?

입력 2015-07-15 02:05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뜻이다. 스페인의 신예 감독 카를로스 마르케스 마르세트가 연출한 영화 ‘10,000㎞’(사진)는 이 말이 맞는지 실험하는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서 7년째 함께 사는 알렉스(나탈리아 테나)와 세르기(다비드 베르다게르)는 임신을 계획 중인 연인이다.

하지만 사진작가인 알렉스에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년간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오면서 둘은 떨어져 살게 된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약 1만㎞다. 멀리 있어도 둘은 컴퓨터 화상 채팅으로 사랑을 이어 간다. 서로의 일상을 사진 또는 동영상으로 보여주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영화는 제한된 무대와 대사로 진행되는 한 편의 연극처럼 절제의 미덕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등장인물은 주인공 남녀 둘뿐이다. 컴퓨터 화면 속에 나오는 포털사이트 거리뷰를 빼면 무대가 되는 공간 역시 남자가 사는 바르셀로나 아파트와 여자가 1년간 머물게 된 로스앤젤레스의 집뿐이다. 흔한 회상 장면 하나 없을 정도로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구성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대사도 남녀의 전화통화와 주고받는 화상 채팅이 전부다.

24시간 돌아가는 폐쇄회로(CC) TV 중계와 다름없는 남녀의 화상 채팅은 점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모니터 밖의 삶까지 통제하거나 간여할 수는 없기에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조금씩 쌓여간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흐르고 100일과 6개월을 거치면서 남녀의 감정은 미묘하게 바뀐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은 스크린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남녀 관계의 본질을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잡아낸 연출력이 돋보인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컴퓨터 모니터 너머의 감정변화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연인 사이의 미세한 균열은 결국 거리나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지 못하는 시간의 문제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16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02분.이광형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