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만원권 3000장 세며 시간 끌어… 은행원 기지로 보이스피싱 막았다

입력 2015-07-14 02:35 수정 2015-07-14 10:06
“10분 전에 4500만원 입금된 내역이 있네요.” 지난 7일 오후 3시20분쯤 서울 구로구 신한은행 중앙유통단지점 A모(36·여) 주임은 돈을 인출하러 온 B(48)씨에게 이렇게 얘기하며 ‘입금인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신한은행은 1000만원 이상을 당일 입출금할 경우 입금인에게 정상 절차를 거쳐 입금했는지 확인하고 있다.

금방 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B씨는 30분가량 지체되자 불만을 터뜨렸다. “가게 전세계약금인데 왜 내주지 않냐”며 따졌다. 이 계좌는 B씨 본인 명의 계좌여서 은행이 B씨의 출금 요구를 거절할 근거는 없었다.

상황을 수습하러 온 C(35) 과장도 4500만원이란 큰돈이 입금되고 곧바로 인출 요청이 들어왔다는 점이 계속 걸렸다. 보이스피싱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C과장은 B씨를 달래기 위해 금고에서 일부러 1만원권 100장이 묶인 현금다발 30개와 5만원권을 섞어 가져왔다. 그러곤 B씨가 보는 앞에서 현금다발 띠지를 풀어 한 장씩 세기 시작했다. 이미 1만원권 100장이라는 확인 도장까지 찍혀 그대로 지급해도 문제되지 않는 거였지만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C 과장의 ‘촉’은 적중했다. 20여분 뒤 입금인으로부터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은행 측은 오후 4시21분쯤 B씨가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B씨는 현장에서 검거됐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B씨를 상대로 보이스피싱 가담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B씨는 “대부업자가 신용도가 낮다며 통장에 거액의 입출금 내역이 있어야 신용도가 올라간다고 해 시키는 대로 했다. 나도 피해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B씨의 휴대전화에서 070 국제전화 통화 내역 등을 찾아내 주변을 수사 중이다.

황인호 김판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