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국민 “이럴거면 투표 왜 했나” 당혹… 긴축반대 투표 무의미해져 더 가혹해진 긴축안에 절망

입력 2015-07-14 02:37
12일(현지시간) 오후 그리스 수도 아테네 중심가에 ‘나치 추종자’라는 문구와 함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사진을 담은 현상수배 전단 형식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쇼이블레 장관에 히틀러의 콧수염을 합성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치러진 채권단 긴축안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오면서 축제 분위기에 젖었던 그리스 국민들이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국면 전개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애초 채권단이 요구했던 내용보다 더 가혹한 긴축안을 제시하고 나서면서 ‘반대’로 결론 난 국민투표 결과가 무의미해진 데다 13일 채권단과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지만 혹독한 긴축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2일 이 같은 치프라스 총리의 ‘유턴’ 행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그리스인들의 모습을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관련 소식을 전하며 “그리스인들의 예상이 걱정으로 번져 절망으로 주말을 끝냈다”고 소개했다. 언어장애 치료사인 마리오스 로지스(23)는 “긴축안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 모두가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투표를 왜 했는지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변했다”고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특히 수년간 부가가치세 우대조치와 보조금 등의 혜택을 받아온 그리스의 도서지역 주민들은 혜택을 잃게 되면서 관광산업 위축 등을 우려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파로스 섬의 마로코스 코베오스 시장은 “주민의 생활비가 감당 못할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며 “관광업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인근 터키, 몰타는 물론 이탈리아, 스페인에 대해서도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오니아 제도 가운데 하나인 팍소스 섬의 스피로스 블라호폴로스 시장도 “치프라스는 큰 실수를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푸념했다. 개혁안 발표 이튿날 아테네 중심가에서는 “그리스는 식민지가 아니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개혁안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연일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그리스를 옥죄는 독일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아졌다. 유럽의회 부의장으로 그리스 집권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의원인 디미트리오스 파파디물리스는 TV에 출연해 독일 등의 반대를 “그리스와 그리스 국민을 굴욕 시키거나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라고 강력 비난했다.

유로존 정상회의가 시작된 12일 저녁부터 13일 오전까지 트위터에는 ‘이것은 쿠데타(ThisIsACoup)’라는 해시태그는 물론 초강경 기조로 그리스를 압박했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을 나치 문양과 합성한 사진 등이 나돌았다. 유럽연합 깃발의 금색별을 나치 상징으로 재배열하거나 유럽연합 깃발을 들추면 나치 상징이 나오는 그림도 퍼졌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