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문산에서 학교 건축자재 납품업체를 운영하던 사장 이모(52)씨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 평범한 가장이었다. 세월호 불황에 부도가 났고, 곧 재기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한 해를 버텼지만 지난 6월 메르스 여파로 예정된 공사마저 줄줄이 취소됐다. 극심한 생활고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최근에는 밥 한 끼 먹는 것도 버거워 지인이 마련해 준 인근 컨테이너 박스로 거처를 옮겼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와 백혈병으로 골수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형을 돌보면서 생활은 더욱 팍팍해졌다. 이즈음 그는 “딱 500만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지난 4일 부자가 많이 산다는 서울 강남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고급 승용차가 거리를 메웠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특히 여성 혼자 운전하는 외제차에 눈길이 갔다.
하루를 꼬박 길에서 보낸 그는 다음 날 오후 9시쯤 강남구 H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A씨(60·여)를 따라 벤츠 승용차에 올라탔다. 직전에 백화점 화단에서 주운 공업용 커터칼을 들이밀며 “빨리 출발하라”고 협박했다. A씨는 “돈을 다 가져가라”며 차 밖으로 나와 비명을 질렀다. 이씨는 놀라 칼을 떨어뜨리고 그 길로 달아났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에 올라 문산으로 향했다. 이씨는 5일 만인 10일 오후 컨테이너 박스에서 검거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3일 이씨를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부자가 많이 산다는 강남에 가서 사정하면 누군가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당시 이씨가 밥을 먹지 못해 매우 힘겹게 걷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며 “검거돼 조사를 받을 때도 형사가 시켜준 볶음밥 곱빼기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고 전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강남 백화점서 강도가 된 50대 가장… 세월호·메르스 여파 부도·일감 줄어 생활고
입력 2015-07-14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