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눈앞 성과에만 집착했었다는 서울공대 연구백서

입력 2015-07-14 00:40
서울대 공대가 백서를 통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쏟아냈다. ‘좋은 대학을 넘어 탁월한 대학으로’라는 부제가 달린 이 백서에서 서울대 공대는 연구의 질보다 양을 강조하는 시스템 때문에 탁월한 연구 성과가 부족했다고 참회했다. 눈앞의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연구 풍토를 야구에 비유하며 자성하기도 했다. “홈런(실패 확률이 높은 어려운 연구)을 치려는 노력보다 배트를 짧게 잡고 번트를 친 후 1루 진출(단기성과, 논문 수 채우기 등)에 만족하는 타자였다.” 한국 최고 대학의 처절한 자기고백이자 반성인 셈이다. 이는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는 한국의 현 상황과 맥이 닿아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백서는 서울대 공대가 정부·산업계의 연구·개발(R&D) 투자 대비 탁월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는 실패 위험이 높은 창의적인 연구를 회피하려는 교수들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고 밝혔다. 또 논문 수는 늘었지만 인용 빈도는 낮다고 했다. 그 배경으로 연구의 질보다 양을 강조하는 평가 시스템을 들었다. ‘문어발식 연구’는 정부의 단기적인 R&D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 통상 연구과제는 단기(보통 3년)로 지원이 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재정적 후속대책도 없는 편이다. 교수들이 극도의 위험 회피 성향을 보이고 가급적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일본 공대 교수들이 전폭적인 지원 아래 7∼10년 동안 한 연구 분야에 매달리는 것과 비교된다. R&D 성과가 실제 기술 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고 한다.

한국의 인구 대비 공대 졸업생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1만명당 공대 졸업생은 10.9명으로 독일(5.5명) 영국(4.4명) 미국(3.3명)을 훨씬 앞지른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정작 현장에서 쓸 만한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유능한 엔지니어 배출 수준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거의 꼴찌 수준이다. 우리도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려면 대학과 정부·기업 모두 더 치열하게 반성해야 한다. 양적 경쟁을 멈추고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백서에 언급된 대로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는 ‘고슴도치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