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까지 상품화하나… 인천 괭이부리마을 쪽방촌에 ‘1박에 1만원’ 체험관 추진 논란

입력 2015-07-13 02:28
인천 지역의 대표적 달동네인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 모습. 인천 동구가 이곳에 ‘옛 생활 체험관’을 조성하려 하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제공
인천 지역의 대표적 달동네인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 모습. 인천 동구가 이곳에 ‘옛 생활 체험관’을 조성하려 하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제공
6·25전쟁 직후 조성돼 김중미씨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에 지방자치단체가 외부인 생활체험관 건립을 추진하자 지역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체험관광이 대세라지만 가난을 상품화하는 건 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인천 동구는 다른 지역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쪽방촌에서 숙박을 하며 옛 생활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달 중순 ‘인천시 동구 옛 생활 체험관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고 12일 밝혔다.

옛 생활 체험관의 1일 숙박 체험료는 1만원으로 책정됐다. 구는 체험관을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쪽방촌인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안 ‘곳방’에 만들기 위해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구는 이곳에 괭이부리마을의 옛 사진, 요강, 흑백 텔레비전, 다듬이 등 지역 거주 주민들의 생활현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관광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쪽방촌을 관광지로 만들어 상품화하려는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8일 동구의회를 방문해 구의원들에게 반대 이유를 설명하고 주민 160여명이 작성한 ‘괭이부리마을 옛생활체험관 반대 서명’을 전달했다. 한 쪽방 거주 노인은 “우리가 무슨 원숭이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지자체가 가난을 상품화해 쪽방촌과 마을 주민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다”고 구의원들에게 호소했다.

한 주민은 “지난 5월 어린이날에 유치원 버스 4대가 마을에 와서 아이들이 구경을 했다. 한 아이가 지나가면서 옆에 있던 친구에게 ‘공부 안 하면 이런 데서 살아야 한대’라고 말하더라. 낯 뜨거워 혼났다”고 하소연했다.

‘기찻길옆작은학교’ 상근교사 임종연씨도 “쪽방촌은 여름이면 더워서 문을 열어 놓는데, 체험관이 들어서면 주민들의 고단한 삶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동구의회는 13일 조례심사특별위원회를 거쳐 17일 본회의에서 이 조례안에 대해 심의한다. 구는 조례안이 통과하면 다음 달부터 체험관을 본격 운영할 계획이다.

이흥수 동구청장은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주거환경개선 우수 사례로 선정한 곳인 만큼 국·시비 매칭사업으로 2억원가량을 투입해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