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병호] 트럼프 신드롬

입력 2015-07-13 00:10

bombastic(허풍 떠는·과장한), boastful(잘난체하는·뽐내는), unfiltered(절제되지 않은), ranting(소리를 꽥꽥 지르는), ridiculous(웃긴), inane(쓸모없는), reckless(무모한). 미국 언론들이 공화당 대선 후보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를 일컬을 때 쓰는 표현들이다.

멕시코 이민자들을 강간범·마약쟁이로 규정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다 바보이며, 자신은 신이 창조한 최고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후보가 바로 트럼프다. CNN방송의 정치전문가 S E 쿠프는 그의 출마선언 현장을 본 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묘사할 방법이 없다”고 당황할 정도였다.

트럼프는 출마 선언 직전까지 NBC방송의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인 ‘어프렌티스(견습생)’에 출연해 왔다. 직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우승하면 트럼프가 취직시켜준다. 트럼프는 거기서도 기고만장했다. 그가 툭 하면 소리치며 내뱉는 ‘넌 해고야’라는 말은 약자인 견습생 면전에서 하는 말치곤 참 예의 없는 표현이었다. 미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부(富)의 만능주의’ 때문에 가능한 프로그램이었다.

미국 지식인들은 대선 자체가 리얼리티 쇼가 됐다고 자조하고 있다. 마치 2007년 우리 대선의 ‘허경영 열풍’과 비슷한 양상이다. 트럼프가 지난 9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 15%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미 독립 언론인인 몬텔 윌리엄스는 “미국인들의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엄중함조차도 눌러버렸다”고 한탄했다.

그런 트럼프를 CNN이 간판 앵커를 내세워 특별 인터뷰를 진행해 온종일 방영하고 있고, 워싱턴포스트 등 정론지들도 앞 다퉈 ‘웃기다’는 식이긴 하지만 트럼프 얘기를 메인 뉴스로 등장시키고 있다. 시청률과 신드롬 앞에서는 정론도 사라진 모습이다.

손병호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