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이양호)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연구원 세미나실에서 ‘한국의 일본인 교회’를 주제로 제206회 월례세미나(사진)를 열고 일제 때 조선인으로 이뤄진 ‘식민지 교회’와 일본인이 다닌 ‘식민교회’의 유기적 관계를 고찰했다.
민경배 연구원 명예원장은 “일제 때 한국에 살았던 크리스천 일본인 중 한국교회를 도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암리교회 사건 등에 앞장선 사람도 있다”면서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는 한국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가 1915년 기독교 학교로 인가를 받았는데 이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면서 “조선인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조선총독이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민 명예원장은 1911년 발생한 ‘105인 사건’도 크리스천 일본인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제는 전국에 있는 집사 이상의 기독교인 700명을 잡았다”며 “그러나 경성교회 장로였던 와타나베 지휘관의 도움으로 105명만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105인 사건처럼 조선 기독교인의 희생을 줄인 사람도 있지만 반대 경우도 있다. 경성교회 일본인 장로가 제암리교회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민 명예원장은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고난을 딛고 일어선 한국 기독교의 저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 기독교는 105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조직했다”며 “일본 총독부 사람들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조선 기독교인에 대해 ‘가슴을 펴고 힘있게 다니며 땅에서 걸을 때 소리가 나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
한국교회사학연구원 ‘한국의 일본인 교회’ 세미나… “일본 총독부, 조선 기독인 두려워했다”
입력 2015-07-13 0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