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마도 곳곳서 ‘한국 지우기’ 흔적 뚜렷… 대마도반환연합회 등 목회자·성도 현지 답사

입력 2015-07-13 00:50
대한민국대마도반환연합회와 독도의병대, 독도NGO포럼 회원들이 지난 8일 대마도에 온 한국인 관광객과 함께 연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 앞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고 있다.
1703년 일본으로 향하던 중 조난당한 조선 역관 112인의 추모비 앞에서 기도하는 박세환 목사.
대마방위대가 최근 대마도의 역사를 수정하기 위해 “대마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적시한 안내문.
대한민국대마도반환연합회장 박세환(60) 목사는 지난 8일 대마도에 있는 연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이곳에 유배된 뒤 적(敵)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며 단식하다 순국한 최익현 선생이 생각나서다.

박 목사는 “최익현 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이 느껴진다. 대마도가 부산에서 49.5㎞ 거리(일본 본토에선 145㎞)에 불과한 대한민국 땅이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 목사는 지난 7일 독도의병대(대장 오윤길 집사) 독도NGO포럼(회장대행 이부균) 회원 10여명과 함께 대마도 히타카츠 항을 찾았다. 대마시 경찰은 회원들의 가방과 소지품, 신발까지 검색하며 방문목적을 확인하고 입국을 허락했다.

회원들은 대마도 역사·문화·전통과 연계한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대마도 최남단에 위치한 쓰쓰자키에서 대한해협이 대마도 오른쪽에 위치한 안내표지를 발견하고 대마도가 분명한 대한민국 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들은 대마도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너가 살았고, 우리나라의 통치를 받아온 명백한 우리 영토라고 주장했다.

대마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사학자 나가도메 히사에는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대마도 쪽으로 조류가 흐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저서에서 “상고시대 남해안 사람들은 배를 타고 조류를 따라 무인도였던 대마도에 도착해 대마도인의 선조가 됐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많은 지도에도 우리 영토로 표시돼 있다.

1740년 경상도지 기록을 보면 부산에 살던 송(宋)씨가 대마도로 건너가 종(宗)씨로 성씨를 바꾸고 34대를 내려오면서 대대로 대마도의 태수, 즉 대마도의 주인노릇을 했다. 그런데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1871년 대마도 태수를 폐하고 이즈하라 현으로 만들었다가 1876년 나가사키 현으로 편입시켰다.

일본은 최근 한국 교계와 시민단체들이 대마도 반환운동을 시작하자 대마도 역사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수령 1500년의 백제은행나무’란 안내판에서 ‘백제’를 삭제했고, 가마자카 전망대의 ‘종중상의 초대 도주’ 이야기가 나오는 안내판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대마방위대가 새로 설치한 일본·한국어로 된 안내판에는 대마도가 일본의 땅임을 적시했다. 붉은 글씨로 ‘일·한 친선을 중요하게’라고 쓴 제목의 안내판에는 ‘쓰시마 도민은 일·한 친선을 소중히 하는 한국인을 환영합니다. 일본 고유의 영토 쓰시마는 역사와 관광의 섬입니다’라고 썼다.

대한민국대마도반환연합회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 등에서 대마도 반환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7000여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연합회는 연내에 서명지를 국회에 제출하고 ‘대마도 반환 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할 계획이다. 또 국내 초·중·고 교과서에 대마도의 일본명인 쓰시마 대신 대마도로 표기할 것을 교육부에 요청할 예정이다. 연합회는 다음달 14일 탑골공원 앞에서 ‘대마도의 날 국민대회’를 갖는다.

독도의병대 대장 오윤길 집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도 60여 차례 국내외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정부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며 “대마도 분쟁이 동북아 평화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 미국 제지로 중단됐을 뿐 대마도는 삼국시대부터 우리 영토”라고 말했다.

대마도=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