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 운영 살펴보니… 인출책이 돈 찾아 도주 속고 속이는 조직원들

입력 2015-07-13 02:41
“제가 지금 그 사람을 은행 앞에서 봤거든요. 빨리 와주세요.”

지난 5월 18일 오후 4시쯤 112 신고 전화를 건 남성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최근 발생한 폭행사건 피해자인데 가해자와 마주쳤다는 거였다. 경찰은 서울 송파구 은행으로 출동해 창구에서 막 2400만원을 찾은 최모(25)씨를 잠실지구대로 임의동행했다. 하지만 최씨는 폭행사건을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신고자는 전화기를 꺼버려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최씨를 풀어줬다.

최씨는 폭행사건 가해자가 아니라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통장 명의를 빌려주고 인출을 도맡아온 이른바 ‘통주’였다. 피해자를 자처해 112로 전화한 사람은 이 조직의 국내 총책 강모(31)씨다. 최씨가 은행에서 인출한 돈을 받아가려고 기다리던 수금책을 따돌리기 위해 마치 피싱 범행이 경찰에 발각된 것처럼 보이도록 거짓 신고전화를 한 거였다. 강씨와 최씨가 짜고 보이스피싱 수익금을 가로채려 한 것이다.

이 조직은 최근 대포통장을 이용한 출금이 힘들어지자 통장 명의를 빌려주고 돈까지 인출해주는 대가로 인출액의 5∼10%를 받아가는 통주 8명을 고용했다. 이후 통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인출금 ‘먹튀’ 시도가 속출했다. 지난 3월에도 다른 통주 김모(49)씨가 서울 강남구 은행에서 수금책 박모(40)씨 등을 따돌리고 통장을 갖고 달아났다.

이런 분란 속에 이 조직은 경찰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조직원들은 서울과 경기 안성 등지에서 잇따라 검거됐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중국 총책의 지시를 받아 검찰 직원을 사칭하며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11명에게 2억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최씨 등 5명을 구속하고,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전수민 기자